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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묘 장식물 망주석
이완장군묘 망주석 가상복원_0 돋보기
분묘 장식물 망주석

분묘 장식물 망주석

일반정보

무덤 자리 알려주는 돌기둥



망주석은 무덤 앞 좌우에 세워,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돌기둥을 말한다. 망석, 망두석, 망주, 망주석표, 석표, 석주, 전죽석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중국의 화표주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용어의 혼란 때문에 조선 세종 때에 망주석으로 통일하였다. 본래 신라시대 괘릉과 흥덕왕릉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다. 이를 보면 통일신라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 일반적으로 세워졌다. 멀리서 묘지를 바라보고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지이다.



기둥과 대석으로 이루어진 표지



망주석은 크게 기둥과 대석으로 나눈다. 정팔각형의 기둥돌 위 부분은 둥근 원수를 만들고 그 아래쪽에 연주를 새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구름모양의 운각을, 아래에는 염의를 새긴다. 일설에는 운각을 운두라고 하고, 염의를 여모라고 한다. 기둥부 가운데 있는 세호는 주로 호랑이, 다람쥐 등을 조각한다. 보통 오른쪽 기둥에는 오르는 형상으로, 왼쪽 기둥에는 내려가는 형상으로 조각한다. 전자는 오름형(우주승형)이라 하고 후자를 내림형(좌주강형)이라고 한다. 중간에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옛날에 금줄을 걸어 놓도록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석의 3.6자 정도인데 밑의 1자는 땅 속에 묻히므로 눈에 보이는 부분의 높이는 2.6자이다.

전문정보

무덤의 위치를 알려주는 망주석(望柱石)



망주석은 무덤 앞 좌우에 세워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돌기둥을 말한다. 망석(望石), 망두석(望頭石), 망주(望柱), 망주석표(望柱石表), 석표(石表), 석주(石柱), 전죽석(錢竹石)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중국의 화표주(華表柱)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용어의 혼란 때문에 조선 세종 때에 망주석(望柱石)으로 통일하였다.

신라시대 괘릉(掛陵)과 흥덕왕릉(興德王陵)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다. 이를 보면 통일신라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 일반적으로 세워진다. 멀리서 묘지를 바라보고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지이다.

망주석은 크게 기둥과 대석(臺石)으로 나눈다. 정팔각형의 기둥돌 위 부분은 둥근 원수(圓首)를 만들고 그 아래쪽에 연주를 새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구름모양의 운각(雲角)을, 아래에는 염의(廉衣)를 새긴다. 일설에는 운각을 운두(雲頭)라고 하고, 염의를 여모(簾隅)라고 한다.

기둥부 가운데 있는 세호(細虎)는 주로 호랑이, 다람쥐 등을 조각한다. 보통 오른쪽 기둥에는 오르는 형상으로, 왼쪽 기둥에는 내려가는 형상으로 조각한다. 전자는 오름형(右柱陞形)이라 하고 후자를 내림형(左柱絳形)이라고 한다. 중간에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옛날에 금줄을 걸어 놓도록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석의 3.6자 정도인데 밑의 1자는 땅 속에 묻히므로 눈에 보이는 부분의 높이는 2.6자이다. 그 지름은 2.1자이며 정팔각형으로 다듬는다. 그 높이 2.6자를 균분하여 상층과 하층을 만들고 중간에 허리를 만든다. 허리의 높이는 0.6자이고 상층높이는 0.9자, 하층높이는 1.1자로 하였다. 상대의 아래쪽에는 피어나는 연꽃잎인 앙련(仰蓮)을, 하대의 위쪽에는 오무라든 연꽃잎인 복련(伏蓮)을 새기고 그 밑에 운족(雲足)을 새기기도 한다. 특히 기둥에 작은 호랑이를 형상화하였는데 이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대석 밑에 깔린 하박석을 사대석(莎臺石)이라고 부른 능지도 있다.

비교대상

이완장군묘 망주석



이완장군묘는 시도유형문화재 1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상거리 19-1번지에 위치한다. 이완장군은 조선 효종 때의 무신으로 162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묘역은 봉분을 중심으로 둘레에 돌담이 둘러져 있고 봉분 앞에는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드리기 위한 상석과 향로석, 묘역의 좌우에는 문인석, 망주석이 각각 1쌍씩 있다. 이완장군묘의 봉분은 상석을 중심으로 약간의 경사를 주고 둥근 원형 봉분이다. 이완장군묘의 망주석은 묘비 아래에 좌우 1기씩 서 있다. 팔각형의 기본형태를 가지고 있고, 대석부가 생략된 형태고, 세호는 마모가 심해 형태를 알 수 없다.



퇴계묘 망주석



퇴계묘소는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건진산 남쪽에 위치한다. 퇴계 이황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이언적의 주리설을 계승하여 이기이원론을 주장하였다. 퇴계묘소는 산의 정상에 있다. 산길에 난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가면 퇴계묘소를 만날 수 있다. 묘소는 주변에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주변으로 석재들이 널려 있다. 봉분 앞에 상석, 향로석, 동자석 1쌍, 묘비, 망주 1쌍, 문인석이 좌우로 놓여 있다. 퇴계묘소의 망주석은 상단부에 원수, 연주, 운각, 염의가 있으며, 주신부가 다른 것보다 짧고, 대석부가 간략화되어 있다.



안제묘 망주석



안제묘는 경북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동 가느실에 위치한다. 중가구동 길 한쪽편으로 가파른 언덕 중턱에 있다. 안제는 1561년 사마시 합격, 1580년 문과 급제. 성균관 학유, 사헌부 감찰, 사섬시첨정, 형조좌랑, 충청도사, 용궁현감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킨 공으로 원종훈에 책록되기도 하였다. 안제묘는 안동에서 크고 아름다운 석물을 가진 묘소로 유명하다. 안제묘의 구성은 봉분 가운데 묘비가 있고, 상석과 향로석이 1기씩 있고, 봉분의 좌우로 각각 망주석과 문인석이 서 있다. 망주석은 팔각형의 주신부를 가지고 있고, 그 가운데 다람쥐 형상의 세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