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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안동도호부_강가형

산/내/들 자리잡기

학가산과 청량산

안동은 동쪽과 동북쪽에 태백산맥을 접하고, 북으로는 소백산맥에 닿아 있는 태백과 소백이 갈라지는 곳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태백산맥의 서쪽 경사면은 영양의 일월산(1218미터)을 중심으로 하여 급격하게 낮아지는데 이는 다시 안동 제1봉이라 하는 학가산(840미터)에 와서 솟아나게 된다. 곧 안동지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의 지맥은 동북으로 비교적 험준한 산맥을 만들며, 서남으로는 상대적으로 평탄한 지형을 만들고 있어서 안동지역은 큰 산은 없으나 중소규모의 산들이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어 넓은 평지가 드문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지는 표고 500미터를 넘지 않는 낮은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산은 대체로 900미터 이상되는 것은 없으며, 높이 700-800미터 내외의 것으로는 학가산 동남쪽의 황학산, 연점산, 갈라산 등을 들 수 있으며, 500미터 내외의 것으로는 서후면의 천등산, 녹전면의 봉수산, 임동면의 아기산 등을 들 수 있다. 읍성이 자리했던 곳은 영남산 자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완만하게 낮아지다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북서쪽 한부분만 능선 끝자락이 포함되고 있다. 지형이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배치를 보여준다.

반변천과 낙동강

낙동강은 심한 사행천으로 나뭇가지 모양의 침식곡을 이루며 좁고 길게 흐른다. <<택리지>>에 따르면 낙동강에서 낙동이란 본래 상주의 동쪽을 말한다. 낙동강을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러서 태백산의 황지에서 발원하여 예안을 지나 안동부에 이르는 상류지역에서는 예안강이라 불렀으며, 낙동진에 이르러서 비로소 낙동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낙동강은 강의 본류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다가 안동에 이르러 영양 일월산에서 발원한 반변천과 합류하여 방향을 서쪽으로 틀면서 본격적인 흐름을 시작한다. 반변천은 길이 116.1킬로미터의 큰 지류로서 안동시의 동남쪽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반변천 유역은 급경사를 보이는데, 전 유역의 65퍼센트가 40도 이상의 급한 경사를 보이고 있다. 낙동강은 안동시를 벗어나면서 송야천과 합류되며, 이밖에도 동계천, 미천, 역계천, 광산천, 내성천 등의 여러 지천들이 안동시를 관통하여 낙동강에 합류하고 있다. 내륙 수운의 요충지로서 풍산과 안동 등지에 여러 나루터가 있었다는 기록들이 전한다.

풍산평야와 작은 농경지들

안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는 하천이 발달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평야가 발달하지 못하였다. 낙동강 유역의 평야로서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풍산평야를 들 수 있으며, 이 밖에는 그리 넓은 농경지를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안동에는 대규모 주거지역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하천의 합류지점이나 강안의 소규모 농경지를 중심으로 소규모 마을들이 만들어져 오랫동안 변화 없이 저마다의 전통을 형성하면서 수백 년을 내려오게 되었다.

풍수지리

떠나는 배(行舟)를 보호하는 비보풍수의 땅

예로부터 안동은 사람을 가득 싣고 막 떠나려는 배의 모양을 하고 있는 행주형 형국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배가 갖춰야 하는 키, 돛대, 닻을 갖추면 크게 길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만약 이들 모두를 갖추지 못하면 이 배는 안정을 얻지 못해서 뒤집히던지 유실될 염려가 있다. 행주형의 땅에다 우물을 파면 배 밑바닥이 깨져서 침수되므로 흉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행주형은 인물을 가득 싣고 바야흐로 출발하려 하는 배를 멈추어 두는 모습이므로 이 땅에서는 사람이나 재물이 풍성하게 모인다.
안동은 영남산이 뒤쪽에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낙동강 쪽으로 열려 있는 고을이다.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탁 트여진 곳이다. 또 낙동강 본류가 허리띠처럼 흐르고 있어 물을 얻는 득수 때문에 생기를 머물게 하더라도 땅의 형국이 광활한 공터를 이루었기 때문에 생기가 쌓이기 어렵다. 그래서 안동의 경우는 남쪽이 북쪽에 비해서 툭 터져 있어 비어 있는 형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절과 탑을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일직선으로 세웠다. 지금도 벽돌로 만들어진 전탑과 당간지주 등 사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형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남문 밖에 2개의 돌기둥, 즉 석주가 있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읍성을 건설할 당시부터 배에는 돛대가 있어야 안정된다고 해서 여기에다 철 돛대를 세워서 읍성을 진압했다고 한다. 그 때 사용한 철기둥, 즉 동주의 받침돌이 바로 이 가운데 하나라고 전한다. 강변에 건설된 정자와 누각들의 위치는 대부분 완벽한 명당 자리보다는 빈곳이나 모자란 곳을 채워주고 보호하는 비보풍수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안동의 <<영가지>>를 보면 인공적으로 언덕을 만든 조산이나 가산에 대한 기록이 많이 보인다. 빈 곳을 보충하고 살기를 막기 위해서 흙을 쌓아서 산을 만들고 돌을 쌓아올려서 언덕을 만든 것이다. 읍성을 건설할 때 읍의 전면에 수십 개나 되는 절과 탑을 건설하여 읍기를 포옹하여 진정케 했다고 한다. 이 사탑은 오랜 세월 동안에 거의 무너져 없어졌기 때문에 이 사탑 대신에 영위된 것이 바로 조산일 것이다.
또한 안동은 이상하게도 훨씬 작은 고을이나 마을에서도 발견되는 주산이나 조산에 대한 통일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동북쪽에서 북쪽에 이르기까지 일월산, 청량산, 태백산, 학가산에 이르는 산들이 호위하고 있고, 남쪽 멀리는 문필산(또는 갈라산)과 봉수산(또는 남산)이 받쳐주고 있고 읍성 바로 뒤에는 영남산과 목성산이 둘러서 있다. 읍성 중심에서보면 하나같이 낮은 산들이지만 그 외곽으로는 명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어느 산을 주산이나 진산으로 정하기 어려운 특이한 풍수적 조건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