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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해미읍성_읍성형1

소개
개요

마을 명칭 : 해미읍성
소재 주소 :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16번지
지정 번호 : 사적 116호 (1963. 01. 21.)
축성 년도 : 1491년(조선 성종 22) 개축
성곽 둘레 : 1,989미터 성곽 기초부 총연장 길이 1,620미터
성곽 높이 : 4.5-6미터
성곽 면적 : 194,102제곱미터
성곽 형태 : 원형
축성 재료 : 석축
읍성 입지 : 평산성(북쪽 낮은 야산, 동서남쪽 평지)
관아 배치 : 객사(좌) - 동헌(우) 배치. 충청도 병마절도사영 설치.
성문 개수 : 4개(진남문, 동문, 서문, 북암문)
성곽 시설 : 포루 2개소, 수구 1개소
우물 연못 : 우물 3개-6개
읍성 기능 : 군사와 행정기능 혼합

위치

해미읍성은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해 있다. 서산은 충청남도 서북단의 태안반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태안반도는 광주산맥이 한 번 내리 꺾였다가 다시 솟아 올라 생긴 가야산, 팔봉산, 백화산 등 세 줄기의 낮은 산지가 나뭇가지 모양으로 배열된 반도이다. 이 곳은 동쪽의 가야산맥이 예산과 홍성의 경계를 지음으로써 거의 한반도 내륙부와는 차단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이 가야산에서 서남방향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가 해미의 정산이 되고 그 앞에 펼쳐진 너른 들판 위에 해미읍성이 서 있다. 지금은 예산과 서산을 잇는 길가의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지만 예전에는 호서지방의 요충지였다.

역사

해미는 고려시대 때부터 흙으로 만든 토성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까지 옮겨 오면서 화강암으로 만든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호서지방의 요충지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0개월 동안 군관으로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효종 때 북벌정책을 내세우면서 전국의 군사기지인 병영을 강화해 해미읍성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행정시설인 동헌과 객사가 중심인 다른 읍성과 달리 군사기능을 갖고 있는 병영이 설치되었다. 결국 행정과 군사를 통합한 곳으로 사법기능까지 함께 수행되던 곳이다. 근대에 들어서는 충청도 바닷가에 많이 살았던 천주교인들의 박해장소로 참혹한 고문과 사형이 행해졌던 순교성지이다. 해미읍성의 객사는 ‘탱자나무로 목책을 두른 성의 객관’이라는 뜻으로 <지성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실제로 객사터와 성곽 주변에 가시 많은 탱자나무 목책을 두른 흔적이 발견되는데 그 덕분에 ‘탱자성’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특징

읍성은 인공적으로 기능을 모아 집중 배치한 고을의 한 형태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방민의 삶과 문화가 살아 있는 정겨운 공간이다. 원형으로 둘러싼 성 안팎에 관아, 민가, 학교, 시장 등 건축물이 배치되어 있어 다른 읍성과 달리 자연배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해미읍성은 천주교 순교성지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던 장소로 고문과 처형이 진행된 원형 감옥, 회화나무, 서문 돌다리 세 장소는 극적인 장면 설정이 가능하다. 원형감옥은 기존의 영상물에서 한양에 있던 일자형 감옥 형태와 다른 건축 특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