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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안동도호부_강가형

길따라/물따라
뭍길(육로)

안동에서 한양으로 가는 간선도로는 예천과 용궁을 지나 한양과 부산을 잇는 간선도로로 들어가 조령을 넘어 충주, 용인, 판교참을 거친 뒤 한강을 건너 도성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오늘날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안동과 인근지역을 연결하는 가로도 개설되어 있다. <<영가지>>에 따르면 안동부를 중심으로 사방에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견항로에서 금소역을 거쳐 청송부의 경계에 이르는 길과 견항로에서 임하현을 지난 진보현의 경계에 이르는 길이 있었다. 서쪽으로는 모은루에서 풍산현을 거쳐 예천군과 연결되는 길이 있었다. 남쪽으로는 영호루에서 일직현을 지나 의성현으로 이르는 길이 있다. 북쪽으로는 석수암에서 옹천역을 거쳐 영천군에 이르는 길과 송저현을 넘어 예안현과 연결되는 길이 개설되어 있었다.

물길(수로)

낙동강 본류는 강폭이 비교적 넓고 수심이 깊으며 무엇보다도 물길의 경사가 완만하고 하류지역은 얼어붙는 일이 없으므로 내륙수로로서의 이용가치가 높다. 그러므로 선박의 운항한계는 평소 수위 때에 하구에서 290킬로미터 지점인 달지 부근까지, 여름에 물이 불었을 때에는 340킬로미터 지점의 안동까지 작은 배가 올라갔다. 즉 화물을 실은 배가 하구인 구포에서 거슬러 올라가 경상북도 안동의 견항진(개목나루)까지 갔다가 다시 화물을 싣고 내려오는 형태가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이렇게 낙동강을 끼고 발달한 강가마을의 형태를 띠는 안동에는 나루터가 많이 있다. 낙동강에서 돛단배가 운항할 수 있는 최상류 지점, 즉 가항종점인 안동에서 다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골짜기 구석구석으로 연결하는 육로가 만나게 된다.
구전에 의하면 일제시대까지도 구포에서 소금을 비롯한 수산물을 실은 배가 안동까지 운항되고, 내륙지방의 한약재 등 농산물이 다시 하구로 수송되었다고 한다. 또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목재들이 뗏목으로 흘러 내려와 안동의 제재소에서 가공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