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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지형별 전통건축>안동도호부_강가형>다스리기/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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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도호부_강가형

다스리기/살아가기
행정공간

안동 읍성 안에서 동북쪽 방향에 객사와 동헌을 중심으로 관청거리가 형성되었다. 남문에서부터 종루, 제남루, 외삼문, 내삼문을 지나서 객사에 이른다. 객사 동쪽으로 동헌이 있다. 안동대도호부 시절에는 관청이 모두 550여 칸의 웅대한 규모였다.

교육공간

안동읍성의 북문 밖에 공자의 위패를 모신 문묘와 공립교육기관인 향교가 설치되어 있었다. 작은 성균관이라 불릴 정도로 영남에서 으뜸의 규모를 자랑하였지만 6.25 때에 불타 없어졌다.
안동의 인물을 배출한 최고 최대의 교육기관은 역시 서원이다. 도산면의 도산서원, 월곡면의 호계서원, 풍천면의 병산서원이 저마다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을 정신적 지주로 모시는 대표서원이다. 이밖에 역동서원, 임천서원, 묵계서원, 도계서원, 청성서원 등 골짜기 골짜기마다 경치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서원이 있었다.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의 경우, 안동에서는 대학자들이 개설한 서당들이 많아서 먼 곳에서 선비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퇴계 이황이 세운 도산서당, 대산 이상정의 고산서당이 좋은 사례이다. 그리고 벼슬길에서 물러난 유학자들 가운데 자신이 세운 ‘정’이나 ‘정사’ 같은 곳이 휴식기능뿐만 아니라 교육기능을 겸한 곳이 많았다. 청성산의 석문정사, 하회의 겸암정사, 오미리의 죽암서당, 임하의 지촌서당 등 많은 서당들이 남아 있다.

상업공간

읍성 안 객사 앞마당에서 정기적으로 시장이 열렸다. 안동 부내시장이라 불리던 시장으로 대구, 예안, 영주, 동래와의 거래를 통해서 곡류, 직물, 해산물, 땔나무, 연초, 기물 잡화 등이 거래되었다.
낙동가변의 영호루 위아래 여러 나루터와 반변천과 낙동강 합류 지점의 개목나루터에는 객주와 주막들이 길게 늘어선 시장거리가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진보, 청송, 봉화 등지에서 모인 한약재와 가죽 등을 구포에서 출발해서 삼랑진, 현풍, 사문진, 왜관, 낙동, 달야진을 거쳐서 안동에 도달한 소금, 미역 등 해산물과 각종 기물들과 함께 거래되었다.

교통시설

가장 중요한 교통시설은 다리이다. 낙동강 상류인 안동은 겨울이면 물이 줄어들어 나무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다. 옛 다리가 놓였던 곳이 현재 다리가 놓인 곳 근처인 경우가 많다. 동강교는 현재 법흥교 상류 50미터 지점에 있었고, 서강교는 현재 낙동교 하류 200미터 지점에 있었고, 내외교는 현재 선어대 하류 300미터 지점에 있었고, 사천교는 현재의 송야교 자리에 있는데 솟밤다리라고도 부른다. 곡교라는 돌다리는 안기역 북쪽에 있는데 석공인 능조가 개인적으로 가설한 다리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교통시설은 나루터이다. 큰 나루터로는 안동부 남쪽 영호루 아래에 있는 영호나루터(영호진)이다. 관청에서 관할하는 관선과 이층으로 된 누선이 있었다고 전한다. 안동부 동쪽의 견항나루(별칭 포항진, 개목나루)는 구포나 염포로부터 올라온 배들의 종점이 되는 곳이다. 관선이 머물기도 하고 겨울이면 다리가 놓이는 나루터로 일제 때까지 예천 용궁의 삼강진과 함께 낙동강 상류의 대표적인 포구로서 번성하였다. 이밖에 영호루 위쪽의 금문탄 나루, 영호나루 아래에 있는 원당탄 나루도 유명한데 겨울에 큰 다리가 놓였다.

통신시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통신망인 봉수제는 매우 중요한 군사와 행정기능을 수행하였다. 안동부에는 남산(봉지산), 신석산, 개목산, 약산, 감곡산, 남산(소산), 봉화점(당북산)의 7개 봉수가 있었다. 이 봉수대는 남산봉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연결되었다. 남산봉수는 신석산봉수와 15리의 간격으로 연결되고, 다시 15리 간격으로 약산봉수와 연계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일직현의 감곡산봉수와 15리 간격으로, 서쪽으로 풍산현의 소산봉수와 30리 간격으로 연계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개목산봉수와 30리 간격으로 연결되고, 다시 영천의 소이산봉수와 연결되어 있었다. 안동의 봉수대는 봉지산봉수를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직선봉수와 연결되어 있었고 동으로 간선봉수와 연결되어 있다. 특히 봉지산봉수는 남북의 직선봉수를 이어주는 요충지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동해안을 따라오는 간선봉수를 직선봉수와 연결하는 접점에 위치함으로써 제2노선 통신망을 중계하는 중심지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민속공간

민간 풍속과 관련된 장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집성촌이 형성된 옛 마을 동구마다에는 수백 년 동안의 사연을 간직해 온 고목들이 당목이라는 신앙대상으로 서 있다. 대표적인 고목 가운데 안동시 동부동 65번지에 수령 8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조선시대 안동부사가 제사를 모셨다고 하는 읍성의 당목이다. 안동시 송천동 선어대 길가에 있는 모감주나무는 수령 350년의 희귀목으로 지방기념물 제50호이다.
다음으로 관아에서 관리한 성황사가 읍성 남쪽에 있었다. 그리고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을 모시는 서낭당이 대개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서 있었다. 도산면 원천마을이 받드는 서낭당은 마을 뒤 왕모산에 있다. 집을 지키는 주신으로 성주신앙의 고향으로 성주풀이에 등장하는 제비원 또한 불교신앙과 민속신앙이 만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 어귀나 길이 만나는 교차로에는 장승과 솟대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거주공간

읍성 안에는 동북지역의 관청거리를 제외하고는 아전과 평민들이 주로 거주하였다. 그리고 읍성의 성벽을 둘러싸고 민가들이 모여있다.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읍성 밖의 경치 좋고 경작지가 펼쳐지는 곳에 종가를 중심으로 동성마을을 형성하였다. 대표적인 동성마을로 풍산 유씨의 하회, 진성 이씨의 도산, 안동 김씨의 묵계, 의성 김씨의 천전과 금계, 안동 권씨의 도촌, 전주 유씨의 수곡이 있다. 이들 지역들은 어김없이 배산임수의 마을이었다. 호남과 같은 넓은 평야가 없었으므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지맥이 내려온 골짜기마다 논밭이 있고 내가 흐르는 곳에는 반드시 동성마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