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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목조건축물

교육시설
서당 일자형
서당 일자형

서당 일자형

일반정보

글자를 배우며 배움을 시작하는 곳



서당은 학당, 사숙, 학방 등으로 불린다. 서당은 고려시대에 유학이 보급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워져서 조선시대에 더욱 발전된 사립 교육기관이다. 누구나 제한 없이 설립과 폐쇄가 자유로웠다. <<천자문>>처럼 글자를 배우는 단계에서 사서삼경까지 배우는 과목도 다양하였다. 서너 명의 학도를 거느린 작은 서당은 훈장 혼자 가르치기도 하였으나 수십 명의 학생이 있는 경우 나이 많고 학력이 높은 학도를 접장으로 임명해 가르치기도 하였다. 대체로 마을 안이나 가까운 곳에 세워져 어린 아동들이 오고가기 쉬웠다.



마루와 온돌이 결합한 작은 학교



서당 건물은 강학의 장소인 넓고 탁 틘 대청과 훈장이 기거할 수 있는 온돌이 놓여진 방이 결합하는 구조가 가장 일반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서원의 강당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교육이란 같은 기능을 가진 건물이기 때문이다. 문중 서당처럼 격식을 갖춘 건물은 보통 정면 3칸부터 5칸 정도이며, 측면은 2칸에서 3칸이 일반적이다. 또한 양쪽에 온돌방을 설치하고, 그 기단 아래에 난방을 할 수 있도록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기둥은 익공양식을 사용하고, 지붕은 팔작지붕을 사용하여 웅장한 느낌을 갖도록 하였다.

전문정보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가득한 서당(書堂)



서당은 학당(學堂), 사숙(私塾), 학방(學房) 등으로도 불린다. 서당은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세워져서 조선시대에 더욱 발전된 사립 교육기관으로 근대에 들어와 신식 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존속해온 가장 보편적인 교육기관이었다. 이 서당은 완전히 사적(私的)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기본자산이나 허가를 요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설립과 폐지가 자유로웠으며 뜻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설치할 수 있었다.

서당을 구성하는 사람은 훈장(訓長), 접장(接長), 학도(學徒)였다. 학도는 7-8세에서부터 15-16세에 이르는 연령층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20세 전후의 늦깎이 학도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인원수는 3, 4명밖에 없는 소규모의 서당에서부터 몇 십명의 청년층과 아동층이 혼성되어 있는 대규모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이 있었고, 배움 역시 <<천자문(千字文)>>을 배우는 초학(初學)에서부터 경서(經書)를 배우는 사람까지 다양하였다.

규모가 작은 서당에서는 훈장 한 사람이 가르쳤으나 비교적 큰 서당에서는 훈장 혼자 많은 학동을 가르칠 수 없었으므로 학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들고 학력이 비교적 높은 사람을 접장으로 내세워 그보다 하급과정의 학동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서당에 입학하는 연령은 일정한 규정은 없었으나 대체로 아동의 나이가 7-8세 전후가 되면 훈장에게 글을 배우는 것이 통례였다.

서당 건물은 강학의 장소인 넓고 탁 트인 대청과 훈장이 기거할 수 있는 온돌이 놓여진 방이 결합하는 구조가 가장 일반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서원(書院)의 강당(講堂)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강학(講學)이란 같은 기능을 가진 건물이기 때문이다. 문중 서당처럼 격식을 갖춘 건물은 보통 정면 3칸부터 5칸 정도이며, 측면은 2칸에서 3칸이 일반적이다. 또한 양쪽에 온돌방을 설치하고, 그 기단 아래에 난방을 할 수 있도록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기둥은 익공양식을 사용하고, 지붕은 팔작지붕을 사용하여 웅장한 느낌을 갖도록 하였다.

비교대상

무이서당



무이서당은 시도유형문화재 23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예천군 용궁면 무이리 내무마을에 원산성을 향하여 정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무이서당은 크게 강학공간이 서당과 제사구역인 사당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서당은 정면에 자연석 축대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데 2칸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쪽에는 각각 온돌방이 설치되어 있다. 측면에는 각 칸마다 외여닫이문이 설치되어 있다. 서당 뒤에는 잡석기단위에 정면 3칸 측면 1.5칸의 사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토석담장이 감싸고 있다.



기양서당



기양서당은 시도민속자료 1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537-1번지에 위치한다. 기양서원에서 서당으로 고쳐진 건물이다. 따라서 기본 구조는 서원과 같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기양서당의 현판을 단 강당이 나타난다. 강당 건물은 막돌쌓기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 건물이다. 양끝 한 칸씩 각각 온돌방이 있고, 정면 기단 양끝에 아궁이를 두어 겨울 난방을 하고 있다. 강당 뒤에는 따로 문을 달고 둘레 담을 쳐 사당을 설치하였다. 사당 담 왼편에 전사청을 두어 제사공간을 이루고 있다.



도산서당



도산서당은 도산서원과 함께 사적 17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번지에 위치한다. 도산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공간은 온돌방인 암서헌과 마루인 완락재 그리고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락재의 동쪽 벽은 완전히 4짝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4짝의 문을 열어 제치면 완락재와 암서헌이 하나의 공간이 된다. 강학공간을 위한 건물이기 때문에 완락재는 넓은 대청으로 되어 있다. 또한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있도록 들마루의 동쪽 끝부분에 2미터 가량 처마를 더 달아 달개지붕으로 만들고, 그 아래에 마루를 깔아 덧붙여 대청을 2배 더 넓게 쓸 수 있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