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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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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배

강배

일반정보

옛사람들의 물길을 이어주던 강배



우리 배를 한선이라 부르는데, 크게 바닷배와 강배로 나룰 수 있다. 내륙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큰 하천들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특히 수많은 강배들이 있었다. 강배의 종류는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나누는데, 강바닥의 깊이에 따라 오가는 배의 규모가 제한을 받았다. 또한 용도에 따라서 곡식을 운반하는 당도리선, 땔감을 운반하는 시회선, 세금용 곡식을 운송하는 참운선, 소금을 운반하는 운염선 등 다양하게 구분되었다. 그 가운데 사람과 짐, 더 나아가 소나 말을 실어 나르던 작은 강배인 나룻배나 짐배가 우리네 마을 앞 강가에서 가장 자주 만나던 배이다.



우리네 강물에 적응한 평평한 배 밑바닥과 길이가 긴 모양



강배는 강바닥이 얕은 우리나라 하천의 상황에 잘 적응한 형태를 보여준다. 배 밑이 평평하고, 앞뒤가 별다른 시설 없이 강 언덕에 닿아서 오르내리기 쉬운 형태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는 배 밑의 너비가 더 넓고, 배의 밑바닥에는 둔테를 대었고 그 위에 마루를 깔았다. 우리말로는 나룻배를 ‘나룻개’라고 한다. 우마차를 실어 나르던 나룻배는 이물의 덕판이 없고 비우도 몇 쪽을 떼 내어 소나 말이 오르내리기 편하게 하였다. 이 나룻배에는 돛대를 세우지 않고 돛도 달지 않았다.

전문정보

내륙의 물길을 오고 갔던 강배(江船)



한반도는 바다에 면한 긴 해안선과 국토를 가로지르는 7대 강을 갖고 있어 일찍이 물길을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발전하였다. 바다나 강을 운항하는 우리나라의 배를 크게 한국의 배,

한선(韓船)이라고 부른다. 독특한 제작기법과 생김새를 갖고 있는데, 크게 바닷길을 다니는 해선(海船)과 강길을 다니는 강선(江船)으로 나눌 수 있다. 그 가운데 강선은 다시 노를 젓는 노선(櫓船)과 큰 돛을 다는 광선(廣船)으로 구분되었다. 대체로 강선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형태이다. 배의 크기도 몇 명밖에 태우지 못하는 소형선에서 100여 명을 태울 수 있는 대형선에 이르기까지 대, 중, 소로 나누었다.

조선시대에 지방의 큰 강이나 깊은 냇물에는 대개 나루터가 있고 나루터에는 나룻배가 있었다. 나루터는 규모에 따라 진(津)이나 도(渡)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여기에 배치된 나룻배를 진선(津船)이나 도선(渡船)이라 하였다. 나루터를 도선장이라고 하는 것도 나룻배가 오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다리를 건설하는 기술이 미약했던 1900년 초까지 나룻배는 물길을 오가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나루터 가운데 중요한 곳에는 관원이 배치되어 관리를 하였다. 대표적인 나루터로는 한양의 북쪽 관문인 예성강(禮成江)과 남쪽 관문인 한강에 많은 나루터가 있었다. 나룻배는 관청에서 운영한 관선(官船)을 비롯하여 상인들이나 개인이 운영한 사선(私船) 등의 각종 나룻배가 있었다.

한강의 경우, 춘천과 충주 하류는 강배 가운데 대선(大船), 강 상류 쪽은 소선(小船)이 주로 운행하였다. 또 선박의 종류는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용도에 따라서 미곡을 운반하는 당도리선(唐刀里船)이나 토선(土船), 땔감을 운반하는 시회선(柴灰船), 강에서 세금용 곡식을 운송하는 참운선(站運船), 소금을 운반하는 운염선(運鹽船), 군사상 방어목적을 수행하는 대변선(待變船) 등 다양하게 구분되었다. 특히 17세기 이후 상품과 화폐경제의 발전에 따른 상품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운반수단도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점차 배 만드는 기술도 발달하여 한국의 지형과 하천에 맞는 배를 건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주요 하천에 다리가 놓이고 댐이 건설되면서 어디서건 유람선을 제외한 배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고려시대 이래 우리의 강에서 운행된 한선의 기본 구조는 강바닥이 얕은 우리나라 하천에서 운행하기 편리하도록 밑바닥이 평평하면서 뱃전은 얕고 배의 길이가 긴 대신 폭은 좁은 형태였다. 다시 말해 넙적한 이물(앞, 船頭)과 고물(뒤, 船尾), 평평한 배밑, 턱을 따내고 널판대기를 겹쳐서 무으어(붙여) 올린 뱃전, 가로다지 널판대기로 대어 막은 이물비우와 고물비우, 배의 대들보라고 할 수 있는 멍에, 멍에 아래의 뱃전에 구멍을 뚫어서 꿰어 걸은 장쇠, 배밑을 가로로 꿰어 박은 기다란 나무창인 가새, 뱃전을 위에서 아래로 꿰어 박은 나무못인 피새가 우리 강배를 이루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를 가진 강배를 평저선(平底船)이라고 불렀다. 평저선은 운행속도가 느린 대신,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수심이 얕고 물 흐름이 빠른 여울을 통과하기 쉽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는 배 밑의 너비가 더 넓고 배의 밑바닥에는 둔테를 대었고 그 위에 마루를 깔았다. 우리말로는 나룻배를 ‘나룻개’라고 한다. 우마차를 실어 나르던 나룻배는 이물의 덕판이 없고 비우도 몇 쪽을 떼 내어 소나 말이 오르내리기 편하게 하였다. 이 나룻배에는 돛대를 세우지 않고 돛도 달지 않는다.

나룻배를 만드는 재료인 선재(船材)는 대부분 송목(松木, 소나무)을 썼으나, 그 밖에 회목(檜木, 노송나무), 유목(楡木, 느릅나무), 추목(楸木, 개오동나무) 등을 바닷물에 담가 두었다가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나무못을 사용했는데 수명이 짧아 세종 때부터는 철못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조선장 김귀성 님이 말하는 강배의 제작과정은 이렇다. 제일 먼저 배 바닥을 놓고 배 밑이나 밑판을 붙인 뒤 바닥쇠를 붙여 활처럼 휘게 한다. 다음으로 선체 모양을 둥글게 만든다. 다음으로 앞주둥이와 하반을 세운 뒤엔 배 옆판을 붙이고 이어서 판위나 장걸을 붙인 다음 배의 대들보라고 일컬어지는 멍에를 건다. 그리고 배 물막기(放水)에 이어 돛대를 세우고 여기에 황토로 광목을 염색한 황포돛을 달고 배의 운전대인 키까지 만들어 달면 대충 모든 일이 끝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배 바닥에 곰장쇠를 끼는 것이다. 곰장쇠에 강배의 생명이 달려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강배와 바다배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바다에선 파도에 견딜 수 있도록 배의 바닥을 탄탄하고 견고하게 고정해주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강배는 얕은 강 바닥의 작은 자갈, 돌멩이들까지 헤치고 지나갈 수 있도록 배 바닥을 유동성 있게 움직이는 장치로 만들어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다. 또 몸체를 고정한 뒤 밑바닥의 나무틈새를 대밥으로 메우는 배 물막기가 조금만 허술해도 배에 물이 들어오기 쉽다.

강을 끼고 살아가는 옛사람들에게 강을 건너 농사도 짓고 장도 보고 학생들이 통학하는 일 등에 쓰이는 나룻배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지방의 작은 나루터에서는 나룻배를 움직이는 사공에게 선임(船賃)은 매번 치르지 않고 추수 때가 되면 곡식을 한꺼번에 치렀다고 한다. 노을이 질 때 돛을 내리고 조선 노를 천천히 저으며 강을 가로질러 가는 강배의 모습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비교대상

국립민속박물관 강배



2000년 ‘한민족의 젓줄, 한강’ 전을 위해 야외에 복원한 강배. 마포나루를 복원하면서 한강변에 운행된 강배로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소형이며, 황포돛을 달고 있다. 밑바닥이 평평하고 뱃전이 얕고 길이가 긴 전형적인 강배의 구조를 보여준다. 마포나루에서 큰 배의 짐을 옮기거나, 소금이나 새우젓을 싣고 강 상류로 운행했다. 한강에서 배를 운행하기 위해서 수심이 얕은 여울을 통과해야 하므로, 강바닥을 평평하게 한 평저선의 형태를 갖춘 것이다.



송파나루공원 황포(黃布) 돛배



송파구 송파나루공원 서호에 있는 황포돛배. 무명에 황포물을 들인 돛을 단 강배를 일러 황포돛배라 한다. 강배의 일종으로 일명 거룻배, 늘배, 장사배 등으로도 불린다. 바다에서 주로 소금과 새우젓을 싣고 올라오면, 한강에서는 이 황포돛배가 소금과 새우젓을 싣고 강 상류로 올라가서 땔감과 물물교환하여 다시 내려와 되팔았다. 그래서 이를 장사배(거루)라고 부른 것이다. 강 상류로 올라갈수록 장사가 잘 되었으므로 배의 흘수가 얕고 길었다.



한강 장사거룻배



조선장 손낙기 님이 소장한 모형으로 돛을 단 범선인 동시에 장사를 하는 상선이다. 생활필수품을 싣고 강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큰 배로 바람이 불 때는 돛을 올려서 바람의 힘으로 운행을 하고, 바람이 없을 때는 강기슭으로 옮겨 노를 저어 간다. 강배의 기본 구조를 모두 갖췄으며 돛대를 세우지 않는 나룻배와 명확히 구분된다. 1969년 팔당댐 건설 이전까지 한강 하구에서 내륙까지 소금, 새우젓 등을 실어 날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