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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묘 장식물 무인석
세중돌박물관 무인석 가상복원_0 돋보기
분묘 장식물 무인석

분묘 장식물 무인석

일반정보

영혼의 집을 지키는 수호무사



무덤을 지키기 위해 사람 형상으로 석조물을 만들어 묘 앞에 세워둔 석물이다. 문관과 무관을 합쳐서 석인이라 부르는 수호시신으로 1쌍씩 마주 보고 세운다. 무인석은 장군석이라고도 한다. 무인석은 하계 안에 세운다. 즉 문인석 다음의 계단 아래에 석상들 앞에 세운다. 무인석은 갑옷을 입고 있으며, 무장의 상징인 칼을 차거나 앞으로 쥐고 있다. 그 크기는 보통 키 9.0자, 너비 3자, 두께 2.5자이다. 문인석이나 동자석과 함께 무덤의 장엄을 치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장중하고 정숙한 느낌으로 조각되어진다.



죽은 자를 공경하며 수호하는 무사



우리나라의 무인석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8세기부터 왕릉에 나타난다. 통일신라시대 출현하지만 초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의 구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인석과 무인석의 구분이 없던 통일신라시대의 석인상은 무덤의 수호자적인 성격이 강하였다고 생각되나 조선시대에 와서 사대부 묘 앞에 문인석과 무인석이 구별되어 배치되는 것은 왕릉 석물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부터는 이들 상이 지니는 상징성도 단순히 무덤의 수호자로서 보다는 유교적인 관점에서 사자에 대한 공경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변화된다.

전문정보

무덤을 지키는 무관 모습의 석인 무인석(武人石)



무덤을 지키기 위해 사람 형상으로 석조물을 만들어 묘 앞에 세워둔 석물이다. 문관과 무관을 합쳐서 석인(石人)이라 부르는 수호시신(守護侍臣)으로 1쌍씩 마주 보고 세운다.

무인석은 장군석(將軍石)이라고도 한다. 무인석은 하계 안에 세운다. 즉 문인석 다음의 계단 아래에 석상들 앞에 세운다.

무인석은 갑옷(甲冑)을 입고 있으며, 무장의 상징인 칼을 차거나 앞으로 쥐고 있다. 그 크기는 보통 키 9.0자, 너비 3자, 두께 2.5자이다. 문인석이나 동자석과 함께 무덤의 장엄을 치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장중하고 정숙한 느낌으로 조각되어진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문인석과 무인석의 구분 없이 석인을 설치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다가 문인석과 무인석을 구분하여 배열한 사례는 당나라 현종의 무덤인 태릉에서 부터이다. 열쌍의 석인상이 동서 2열로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에 홀을 지닌 문인석이, 오른쪽이 검을 가진 무인석이 있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는 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문인석과 무인석을 구분하여 조성하는 전통이 이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무인석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8세기부터 왕릉에 나타난다. 통일신라시대 출현하지만 초기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의 구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원성왕릉인 괘릉에는 관모에 장포를 입은 상과 서역인의 모습을 한 석인상 등 두 종류가 있다. 이들의 모습과 복장은 다르나 갑옷의 흔적이나 얼굴 표현, 근육질의 팔 등에서 무인을 나타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문인석과 무인석의 구분을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에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모신 현릉과 정릉에는 머리에 복두를 쓰고, 몸에는 공복 형태의 장포를 입고 있으며, 손으로 홀을 잡고 있다. 무인석은 갑옷을 입고 칼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문인석과 무인석의 구분이 없던 통일신라시대의 석인상은 무덤의 수호자적인 성격이 강하였다고 생각되나 조선시대에 와서 사대부 묘 앞에 문인석과 무인석이 구별되어 배치되는 것은 왕릉 석물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부터는 이들 상이 지니는 상징성도 단순히 무덤의 수호자로서 보다는 유교적인 관점에서 사자에 대한 공경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변화된다.

비교대상

세중돌박물관 무인석



세중돌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303-11번지에 위치한다. 이 박물관은 석조에 관한 것을 전시해 놓았다. 무인석은 무덤 앞에 동자석, 문인석 다음으로 봉분의 양쪽에 자리잡는다. 무인석의 경우 석마와 같이 석수와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무인석은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머리에는 투구를 썼으며 몸에는 갑옷을 입고 있다. 무인석의 특징인 양손에 긴 장검을 빼어 집고 위엄 있게 서 있다. 이 무인석의 경우는 인체의 비례도 잘 맞고, 조각의 솜씨가 빼어나다.



세중돌박물관 무인석



세중돌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303-11번지에 위치한다. 이 무인석은 화강암을 이용해 조성하였다. 일반적인 무인석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머리에는 투구를 썼으며, 몸에는 갑옷을 입고 있다. 양손에는 장검을 쥐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신발의 묘사나 갑옷 하나하나 전체적으로 섬세하게 돌을 쪼아 만들었다. 특히 갑옷은 쇠사슬을 엮어 만든 방식으로 명나라식 갑옷인 듯 하다.



세중돌박물관 무인석



세중돌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303-11번지에 위치한다. 이 무인석은 크기가 작으며, 다른 무인석에 비해 절반 크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또한 둥근 돌 위에 놓여져 있는데, 돌을 옮겨 와 전시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반적으로 조각의 솜씨가 투박하고, 좋지 않지만, 익살스러운 얼굴모습이 인상적이다. 기본적인 무인석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머리에는 투구를 썼는데, 투구 옆으로 목가리개가 있다. 갑옷은 두석린갑으로 정식명칭은 봉황원수문 용린 갑주로 비늘형식의 갑옷이다. 검은 허리끈 옆에 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