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공간
재실구역
재실
-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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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곳
재실은 묘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로 문중 조상의 묘소 가까이 있다. 문중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제수를 장만하고, 그 제수를 들고 묘소를 찾아가 묘제사를 지내는 의례행위를 지원하는 특수한 건물이었다. 비가 올 때는 재실의 누마루에 제수를 놓고 망배를 올리며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재실은 지역이나 규모에 따라 재사, 재궁, 재실, 재각 등의 이름으로 불려졌다. 특히 유력한 사림세력들이 자리 잡았던 안동, 봉화, 영주지역에서는 묘제사를 위한 거대한 재실을 ‘재사’라고 구별 지어 불렀다. 조상을 제사지내는 유학의 전통에 따라 전국 어디에나 있는 한국건축의 전통적인 유형이다.
묘소 가까이에 묘소를 바라보며
재실은 묘소 주변에 지어진 건물이다. 대부분 묘소의 입지는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결정되므로, 재실 역시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게 된다. 재실은 보통 묘소의 좌우측 계곡의 평탄한 지형을 골라서 세워진다. 대부분의 재실이 마을과 비교적 떨어져서 산지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지형에 자리 잡는다는 점에서 사찰이나 암자의 입지조건과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절이나 암자를 재실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묘소가 외부에 은폐된 폐쇄적인 장소라면, 재실은 문중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개방적인 장소에 위치하여 밖에서 건물을 보는 전망이 강조된다.
17-18세기에 정착된 시설
재실의 기원은 시조묘소와 왕릉 주위에 지어진 부속 건물에서 발생하였다. 조선시대 이전의 제사시설은 주로 왕실에 의해 왕릉 주변에 세워졌으며,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후기로 가면서 점차 사대부의 묘제사와 교육 등 구체적인 기능을 가진 독립 건물로 지어졌다. 특히 17세기 이후 제사예법이 뿌리내리면서 제사만을 담당하는 재실 역시 정형을 갖춰졌다. 이 당시 재실은 가문의 정치 사회적 위세를 대변하면서 상류주택형이나 사찰형 등 대규모 형태로 건립되었다. 유교이념이 쇠퇴한 19세기에는 일자형의 단순한 재실이 다수를 이루며 묘소 수호를 위한 상징적 기능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