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목조건축물

서민주택
조길방 가옥
조길방 가옥

조길방 가옥

일반정보

오래된 초가, 조길방 가옥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소재의 함안 조씨가 11대째 살고 있는 초가로서 약 200년 전 지은 집으로 추정된다. 안채, 사랑채, 아랫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아랫채는 나중에 고쳐 지은 것이다. 안채는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서향으로 앉혔다. 남부형에 속하는 평면 구성으로 2칸 마루의 안쪽에 큰방과 부엌을, 오른쪽에 건넌방을 두었다. 자연석 주초 위에 네모 기둥을 세우고 방 주위에는 흙벽을 쳤으며, 마루 앞의 가운데 기둥만 둥근 기둥을 세웠다. 3량 집의 간소한 구조인 이 집은 초가로는 드물게 보는 오래된 건물이며, 안채의 창문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주택사 연구의 중요 자료



깊은 산골 경사가 급한 산간마을에 자리한 초가로, 현 소유자의 9대조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은 집이다. 사랑채는 60여 년 전에 확장하였고, 아랫채는 30여 년 전 무너진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산 전체가 서향으로 경사져 있고 그 안에 마을이 숨듯이 자리하여 집들은 자연히 모두 서향하게 되었다. 높은 축대 위에 지은 안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사랑채, 왼쪽에는 아랫채가 부속건물처럼 낮게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다. 안채의 앞면 벽에는 크기가 아주 작은 여닫이문 1짝이 있는데 출입보다는 채광과 통풍을 위해 만든 것이다. 초가로는 보기 드물게 오래된 건축으로, 특히 안채 창호문의 규모와 성격은 주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전문정보

옛마을 뒷산 능선을 닮은 초가지붕, 조길방(趙吉芳) 가옥(家屋)



조길방 가옥의 안채는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서향으로 앉았고, 좌측으로 축대를 연장시켜 부엌곁에 장독대를 갖추었다. 축대 앞의 낮은 안마당에는 좌우에 아랫채와 사랑채가 마당을 중심으로 부속건물처럼 낮게 마주보게 배치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채의 비중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조길방 가옥의 중심은 안채이다. 축대 위에 높게 앉은 안채는 사간집으로 뒷산의 경사가 안채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높이 쌓은 축대는 잡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름대로 정갈하게 구성되어 있다. 왼쪽으로 축대가 길게 이어진 자리에는 안채에 부속된 장독대가 있다.

안채 좌우에 각각 一자로 아랫채와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부속건물처럼 낮게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안채의 위상이 돋보인다. 안채 뒤쪽의 산 능선은 초가지붕의 선과 비슷하게 이어져 있다.

안채는 우리나라 서민주택의 유형 중 ‘남부형’의 전형인데, 앞쪽이 개방된 두 칸 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 안방과 부엌이, 오른쪽에 건넌방이 배치되어 있다. 막돌로 주춧돌을 놓아 네모기등을 세웠는데, 마루 전면의 중앙에 있는 기둥만은 두리기둥을 세웠다. 마루 뒷벽은 건넌방 쪽 칸에만 두 짝 열개널 창문을 달아 바람도 통하고 시야도 확 트이게 했다. 뒷벽 위쪽에는 길고 굵은 대나무 두 자루로 시렁을 매어 여러 가지 자재도구들을 얹을 수 있게 했다. 안방과 건넌방에는 마루 쪽으로 외여닫이 살문을 각각 두었는데, 문 높이가 낮아 몸을 구부려야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이다.

벽면은 모두 흙벽을 쳤고, 건넌방 벽면도 역시 흙벽으로 마당 쪽으로 쌍여닫이 살문이 나있지만 오르내리기엔 조금 불편할 정도의 높이이다. 그 밑으로 가마솥을 걸 수 있는 아궁이가 가마솥과 함께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런 형태의 아궁이는 취사와 난방을 함께 할 수 있는 효율성이 돋보인다. 마루에서 큰방과 건넌방으로 출입하는 외여닫이 궁판 세살문은 높이가 매우 낮아서 몸을 구부려야 드나들 수 있고, 특히 안방 전면벽에 낸 외여닫이 살창문은 그 크기가 매우 작아서 출입보다는 채광과 통풍에 뜻을 두고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건넌방 전면 벽에도 40여 년 전에는 같은 형식의 작은 살창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랑채는 곡식을 저장하는 도장, 사랑방, 문간방이 각각 한 칸으로 구성된 삼간이다. 앞쪽에 툇마루가 딸린 사랑방과 문간방은 바깥 마당을 향해 자리하고, 도장은 안마당 쪽으로 개방되어 있다. 막돌 초석에 네모 기둥을 세운 사랑채의 벽면은 원래는 흙벽이었던 것이 보수과정에서 시멘트로 바뀌었다. 사랑방의 방문은 쌍여닫이, 문간방은 외여닫이로 창호지와 문살이 초가지붕과 어울려 정겹다. 사대부 가옥의 화려하고 웅장한 사랑채와 달리 작은 규모에서 소박한 멋이 넘친다.

안바당에서 사랑채를 바라보면 그 구조가 더욱 오밀조밀함을 알 수 있는데, 사랑방은 뒤쪽에 쪽마루와 출입문이 있고, 문간방은 가작을 달아 헛간처럼 쓰고 있다. 같은 건물이라도 이처럼 앞면과 뒷면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구조가 획일적이지 않고 변화가 있다.

부엌은 앞쪽에만 쌍여닫이 널문을 달았고, 벽면에 열 수는 없지만 통풍을 위한 살창이 있으며, 부엌 안의 뒷벽에도 윗벽을 틔워서 통기가 되게 했다. 부엌의 통풍살창과 안방의 외여닫이 살창, 그리고 건넌방의 쌍여닫이 살문은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튀지 않는 변화가 있는 단아한 장식미가 돋보인다.

아랫채는 막돌 초석에 네모기둥 초가이다. 오른쪽에서부터 외양간, 아랫방, 두지가 배치되어 있고, 두지 옆 처마끝에는 디딜방아가 있다. 방아 뒤쪽에는 건물의 모서리에 붙여 안에서 쓰도록 한 측간이 있다. 외양간은 반칸 정도 오른쪽으로 넓히고 윗부분 일부에는 통나무를 갈아 꾸민 다락이 있어 수납공간으로 활용된다.

우리 살림집의 특징 중의 하나가 이웃과의 경계가 그리 살벌하지 않다는 점이다. 조길방 가옥은 집밖을 나서지 않아도 담장을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는 담장의 진수를 보여준다. 대문을 나서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틀면 나타나는 돌담, 아무렇게나 쌓은 듯한데 돌의 크기나 생김새, 무게 등을 생각하고 각각의 돌이 제 역할을 잘 살 수 있도록 쌓았다. 직선이 아닌 자유로운 형태의 곡선, 주위의 나무와 풀들로 인해 담장은 딱딱한 경계를 풀어버린다. 가옥과 길을 구분 지으면서 적당히 이웃과의 선을 지니고 있는 묘함이 있다.

스토리가이드

주제 : 원한

인물 : 일월산 처녀, 마을 총각

배경 : 외딴 초가



줄거리

일월산 아래 초가의 처녀를 두 동네 총각이 사모했는데, 그 중 한 총각이 행운을 차지했다. 그 신랑은 첫날밤 신방 창호지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를 연적의 칼이라 여겨 도망가고 말았다. 신부는 침식을 잊은채 기다리다 한을 품고 죽었는데, 시신이 썩지 않았다. 도망간 신랑은 외지에서 새장가를 들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는 대로 죽곤 했다. 죽은 신부의 원혼 때문임을 안 신랑이 그녀를 일월산에 묻고 사당을 지어 바치자 홀연히 시신이 삭아 없어졌다.



이야기 자료

<자료1>

<<조선왕조실록>> 영조 108 43/02/26(경신) / 고 하릉군의 집에 제물을 돌보아주게 하다



내국(內局)에서 입진(入診)하자 다음과 같이 하교했다.

“어제 수석교(守石橋) 북쪽 가를 지나면서 누구의 집인가 했더니, 고(故) 하릉군(夏陵君)의 집이었다. 아! 부자가 높은 품계였고 80세를 넘겼는데 그 집이 초가로서 이처럼 초라하니, 어떻게 제사를 지내겠는가? 사민(四民)과 다름이 없었다. 길에서 감회가 일어난 것은 전에는 한 칸 대문에서 지영(祗迎)하였는데, 어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아들이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우모를 우러러보았겠는가? 내가 매우 서글프다. 해청으로 하여금 제물을 특별히 돌보아주어 내 뜻을 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