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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목조건축물

상류주택
대문채
대문채

종가 대문채

일반정보

집안으로 들어가는 관문



대문이 있는 골목길을 고샅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통주택에서 골목과 대문을 잘 지켜야 집이 지켜진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대문간은 담과 문이 공간화 되어 이루어지기도 하고 곳간과 행랑이 연이어 대문채 공간을 이루기도 한다. 대문은 바퀴가 달린 초헌이 드나들 수 있는 솟을대문을 만드는데, 외바퀴가 드나들 수 있도록 홈을 판 것과 지붕을 높인 것이 있다. 이는 벼슬을 한 양반의 집에만 있는 대문으로 집주인의 신분을 나타낸 상징으로 여겨졌다. 대문채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집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곳이다. 집 안과 밖을 구분하는 곳으로써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곳으로 여겼고, 외부사람들이 골목을 지날 때 볼 수 있는 곳 또한 대문이므로 대문채에 상당한 의미를 담고 있다.



솟을 대문과 행랑채로 만들어지는 대문



대문을 이루고 있는 것은 크게 대문이 달려 있는 문과 담이다. 상류주택의 대문은 크게 솟을대문과 평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솟을대문의 경우는 대문 좌측에 하마석을 놓아 말을 타거나 내려 디딜 수 있게 하였다. 솟을대문은 일반적으로 두 문짝이 있고 그 위에 살대를 꽂은 다음 중앙에 관아나 향교, 서원의 홍살문처럼 창을 세워 장식하기도 하였다. 또한 솟을대문을 가운데 두고 좌우 양쪽에는 바깥행랑채를 두기도 하고, 한쪽에만 행랑방을 두고 나머지는 마굿간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양반집이면서도 솟을대문이나 삼문을 설치하지 않고 행랑채와 같은 지붕 속에 대문간을 만들어 평대문을 설치한 집들도 많다.

전문정보

상류주택의 관문 대문채



산천이 아름다운 마을 한가운데의 상류주택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가장 처음 만나는 것은 대문채이다. 대문이 있는 골목길을 고샅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통주택에서 골목과 대문을 잘 지켜야 집이 지켜진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대문간은 담과 문이 공간화 되어 이루어지기도 하고 곳간과 행랑이 연이어 대문채 공간을 이루기도 한다. 대문은 바퀴가 달린 초헌이 드나들 수 있는 솟을대문을 만드는데, 외바퀴가 드나들 수 있도록 홈을 판 것과 지붕을 높인 것이 있다. 이는 벼슬을 한 양반의 집에만 있는 대문으로 집주인의 신분을 나타낸 상징으로 여겨졌다.

대문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대문의 실체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삼국시대 고분벽화에서다. 즉 고구려 고분벽화인 쌍영총 주실 북벽에 대문이 있다. 문헌으로는 <<삼국사기>>에 중문과 사방문이란 표현이 처음 나온다.

대문채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집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곳이다. 집 안과 밖을 구분하는 곳으로써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곳으로 여겼고, 외부사람들이 골목을 지날 때 볼 수 있는 곳 또한 대문이기 때문에 대문채에 상당한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신분적으로 높은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에서는 집안의 자랑을 대문을 통해 표현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문패이다. 때로 이 문패가 대문에 붙어 정려문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 문패에는 충신이 배출되었거나, 하늘이 알아주는 효자이거나, 이 집안에 열녀가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것이 조선 유교사회에서는 큰 자랑거리였기 때문에 집안에서는 그것을 외부사람에게 알렸고, 조선조정에서는 이 정려문을 이용하여 백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하였다.

대문을 이루고 있는 것은 크게 대문이 달려 있는 문과 담이다. 상류주택의 대문은 크게 솟을대문과 평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솟을대문의 경우는 대문 좌측에 하마석을 놓아 말을 타거나 내려 디딜 수 있게 하였다. 하마석은 직육면체에 가까운 커다란 자연석을 솟을대문 밖에 놓거나 계단석 모양으로 다듬어 사랑채 기단 아래 놓기도 하였다. 솟을대문은 일반적으로 두 문짝이 있고 그 위에 살대를 꽂은 다음 중앙에 관아나 향교, 서원의 홍살문처럼 창을 세워 장식하기도 하였다. 또 솟을대문 위에 다락을 만들어 가마와 같은 탈것을 올려놓기도 하였다. 또한 솟을대문을 가운데 두고 좌우 양쪽에는 바깥행랑채를 두기도 하고, 한쪽에만 행랑방을 두고 나머지는 마굿간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대문에 붙은 행랑채에는 온돌방 1칸과 마루 1칸을 설치하여, 온돌방에는 대문을 열고 닫는 일을 맡아 하던 행랑인이 기거하고, 마루 1칸은 광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솟을대문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문을 설치하는 삼문 형식의 대문도 있었다.

양반집이면서도 솟을대문이나 삼문을 설치하지 않고 행랑채와 같은 지붕 속에 대문간을 만들어 평대문을 설치한 집들도 많이 있다. 평대문은 행랑의 지붕과 같은 높이로 되어 있고 행랑채의 1칸을 이용하여 문을 만든 형식이다.

솟을대문, 솟을삼문, 평대문들은 모두 두 짝의 대문짝을 안여닫이로 단다. 이 문짝들은 두꺼운 널판을 여러 장 띳장에 붙여서 넓게 한 장의 문짝으로 만든다. 위, 아래 그리고 중간 등 세 곳에 띳장을 대고, 이들 띳장에 널빤지를 못으로 박아 고정시킨다. 국화쇠를 놓고 국화쇠의 못 구멍으로 못을 쳐 문짝의 정면 상, 중, 하 세 곳에 국화쇠들이 한 줄로 늘어서게 장식하기도 한다. 다음 문고리를 달고 안쪽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모양의 빗장을 달았다.

비교대상

가일수곡종택 대문채



가일수곡종택은 중요민속자료 17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419번지에 위치한다. 권보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종가집이다. 집의 구성은 一자형의 사랑채와 문간채, 一자형 대문채, ㄷ자형 안채가 튼 口자로 배치되어 있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우진각지붕으로 평대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면에서 오른쪽은 쌍여닫이 판문 1칸, 외양간 1칸, 헛간 1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면에서 보면 외양간에 작은 창이 하나 나있다. 바깥벽에는 사고석벽으로 되어 있다. 후면으로 가면 개방된 외양간이 중앙에 있으며, 완전개방형의 헛간이 있다.



하회북촌댁 대문채



하회북촌댁은 중요민속자료 8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06번지에 위치한다. 북촌댁은 크게 안채, 별사랑, 대문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一자형 대문채를 들어서면 口자형 몸채와 별사랑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북촌댁 대문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중앙 칸이 지붕이 높은 솟을대문 형식이다. 중앙 칸은 쌍여닫이 대문이 홍살로 꾸며져 있으며, 왼쪽에는 외양간 1칸과 2칸의 창고가 있다. 오른쪽에는 3칸의 창고가 구성되어 있다. 외부에는 중앙의 대문을 제외하고는 사고석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회충효당 대문채



하회충효당은 보물 141호로 지정되어 있고,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6번지에 위치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 유성룡의 집이다. 충효당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긴 행랑과 대문이 결합된 一자형 건물과 口자형 안채, 一자형의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다. 충효당의 대문채는 긴 행랑과 마굿간이 연결되어 있다. 높은 기단 위에 계단을 밟고 서면 중앙의 높은 대문을 만날 수 있다. 충효당의 대문채는 정면 11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에는 높은 솟을대문이 있고, 좌우에는 각각 온돌방들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