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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석조건축물

표창시설
비석
무실정려각 전경
무실정려각 전경_1 돋보기
비석

충신, 열녀, 효자를 표창하는 정려비



정려란 ‘삼강’이라는 전통윤리의 모범인 효자, 열녀, 충신의 행적을 높이 기리는 문이나 비각을 말한다. 유교 국가인 조선시대에 정려는 개인이나 가문의 대단한 명예가 되는 동시에 해당 고을의 등급을 결정하는 중대한 요건이 되기도 하였다. 정려에 대한 기록은 신라 때부터 보이지만 조선시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장려되었다. 정려는 대체로 마을 입구의 길목이나 양지바른 야산 아래에 비각의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한편 후손의 살림집 대문간 앞에 정문을 세워 기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정문은 향교나 왕릉 앞에 일반적으로 세우는 홍살문과 비슷한 형태의 상징적인 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살았을 때의 업적을 오래도록 기념하는 신도비



신도비란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진 기념비이다. 대개 무덤 남동쪽에 남쪽을 향하여 세우는데, ‘신도’라는 말은 죽은 신령의 길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2품 이상의 벼슬을 가졌던 사람만 세우는 것으로 제도화하였다. 비석의 장엄함과 예술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귀부이수비가 주로 쓰였다. 귀부란 아래에 거북모양의 받침대를 세운다는 뜻이고, 이수란 용이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을 새겨 넣은 머리부분을 말한다. 거북과 용이 모두 신성한 동물로써 죽은 이의 권위를 최대한 높이 평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선현들이 머물던 장소를 기리는 유허비



유허비란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현들의 발자취가 남겨진 곳을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세운 기념비를 말한다. 장소를 기리는 기념비로는 성곽, 서원, 석빙고, 교량 등에 세우는 비석도 있다. 대개는 중요한 건축물이나 그 터를 기리는 뜻과 함께 책임의 소재를 기록한 비석이다. 본래 유허란 ‘옛터’나 ‘남긴 터’ 또는 ‘자취’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선현들이 태어났거나 살았고, 또는 임시로 머물렀거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순절하였던 곳을 가리킨다. 유허비의 성격을 띤 비슷한 비로는 유지비나 구기비 등이 있는데, 구기비라는 말은 왕족들에게만 한정되어 사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