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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석조건축물

통신시설
봉수대
울산 주전봉수대 전경
울산 주전봉수대 전경_1 돋보기
봉수대

횃불과 연기를 이용한 아주 오래된 통신제도



봉수대는 밤에는 횃불(봉)로, 낮에는 연기(수)를 피워서 외적의 침입이나 변방의 반란 등 위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이다. 봉수제도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매우 일찍부터 시행한 제도이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설치된 봉수제도는 고려시대 중기인 12-13세기이다. 높은 산 정상에 통신시설을 설치하여 의사를 전달하는 지혜는 매우 일찍부터 시행된 제도이다. 그러나 근대적 제도를 시행한 갑오경장 때에 전기통신제도가 시작되면서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나라의 위급을 알리는 가장 빠른 통신수단



봉수는 설치 지역에 따라 경봉수, 내지봉수, 연변봉수로 나누어 시설과 운영을 달리하였다.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중앙의 봉수로 남산의 목멱산봉수를 말한다. 연변봉수는 해안과 변경의 최전선에 설치한 봉수로 자체적인 군사력을 보유한다. 내지봉수는 경봉수와 연변봉수의 중간 지역에 있는 봉수로 가장 많았다. 변경에 위치한 동북의 경흥, 서북의 강계와 의주, 서남의 순천, 동남의 동래 총 5개 봉수에서 목멱산 봉수대에 연결되는 주선이 직봉이며 그 주변에 간봉이 그물망처럼 이어져 있다. 변경의 상황을 가장 빨리 서울의 임금에게 전달하는 통신수단이다.



5개의 아궁이가 설치된 높은 기단



봉수시설에는 연조와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 연조는 불을 피우는 아궁이로 주로 5개를 방형과 원형으로 만들었다. 연대는 연조를 받치고 있는 기단으로 외적이나 짐승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높게 만들었다. 때로는 담이나 해자를 두르기도 하는데 내지봉수의 경우는 연조만 설치하기도 한다. 연대 위에 봉화를 지키는 군인들의 숙소와 무기고 등의 보조시설들이 세워지지만 지금은 거의 그 흔적만 발견될 뿐이다. 봉수방법은 평시에 1홰로 시작해서 가장 위급한 전쟁을 5홰로 표시한다. 전쟁이 벌어지면 변경에서 중앙을 향해서 5개의 아궁이를 모두 피워 긴박하게 소식을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