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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목조건축물

서민주택
주막
주막

주막

일반정보

나그네에게 먹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집



주막은 여행객에게 주로 술이나 밥을 팔면서, 곁들여 하룻밤 쉴 수 있는 잠자리를 제공하는 술집이자 여관이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시장이 발달하고 민간 여행자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술집의 기능보다 여관의 기능이 중시되었다. 주막은 나라에서 공문서나 물자를 운반하거나 관리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세운 ‘역’이나 ‘원’과는 달랐다. 서민 여행자들을 위해서 자연스레 생겨난 자영 영업집이다. 또 주막은 상인을 대상으로 물건을 보관하고 매매하며 숙박업을 하는 객줏집이나 여각과도 다르다. 주막은 일반 여행자를 대상으로 했으므로 삼남대로를 비롯한 주요 도로, 나루터, 장터, 큰 고개 아래에 위치했다.



나그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주막집 봉노



주막은 서민 나그네가 이용하는 민간 숙박업소였는데 대부분 초가삼간 규모였다. 나그네가 술과 밥을 먹을 수 있는 마루가 있거나 마당 가운데 평상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엌이나 솥단지를 건 부뚜막은 술과 음식을 쉽게 제공하고 손님들을 바로 맞이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둔다. 처음부터 숙박을 목적으로 만든 집이 아니므로 방은 주인이 쓰고, 나그네는 방과 방 사이에 마루를 깔지 않은 봉당에서 머물렀다. 점차 숙박기능이 중시되자 주막에 큰 방을 두어 나그네가 함께 잘 수 있는 봉노(방)를 두게 되었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간직한 여행객들의 애환은 하룻밤 함께 묵는 봉노에서 자연스레 꽃피웠다.

전문정보

주점과 여관의 기능을 함께 갖춘 주막(酒幕)



주막은 여행객에게 주로 술이나 밥을 팔며 부수적으로 하룻밤 쉬어갈 수 있는 잠자리를 제공하는 술집이자 식당이자 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주막은 주사(酒肆), 주가(酒家), 주포(酒鋪)라고 했는데 우리말로 숫막이라고도 불렸다. 주막은 시골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도회지에도 많이 있어 주막거리라는 이름이 생겼을 정도이다. 조선시대에 주막이 많기로 유명했던 곳은 서울은 물론이고, 서울에서 인천의 중간인 소사와 오류동에 많았는데, 서울에서 출발하면 점심 때쯤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관문인 문경새재에도 주막촌을 이루었다. 지금도 그곳에 나라에서 운영하던 조령원(鳥嶺院)과 동화원(桐華院) 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 청주, 대전으로 가는 3개의 큰 대로가 교차하는 천안 삼거리는 능수버들의 전설과 함께 주막이 번성했던 곳이다. 그밖에 경상도와 전라도의 길목인 섬진강 나루터의 화개(花開), 한지와 죽산물 등의 집산지인 전주 등이 주막이 많았던 곳으로 꼽힐 수 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시장이 발달하고 민간 여행자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술 판매 못지않게 숙박업 기능도 점차 중시되었다. 주막은 국가의 문서(통신)나 물자(물류)의 운반을 주임무로 하는 역(驛)이나 참(站), 그리고 공무 수행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원(院)이나 관(館)과는 달리 민간에서 운영하며 서민여행자의 숙식 등 기본적 편의를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소규모 자영 영업집이라 할 수 있다. 또 주막은 일반 여행자보다는 상인을 대상으로 매매업과 숙박업을 하는 객줏집이나 여각과도 다르다. 주막은 일반 여행자를 대상으로 영업하였으므로 삼남대로를 비롯한 전국의 가로망, 나루터, 장터, 큰 고개 아래에 자리하였다.

주막은 주로 서민 나그네가 이용하는 민간 숙박업소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초가삼간 규모다. 이러한 작은 규모에 나그네가 술과 밥을 먹을 수 있는 마루가 배려되거나 마당 가운데 평상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엌은 자연스레 술과 음식을 쉽게 제공할 수 있고 손님들의 주문이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둔다.

규모가 큰 경우 방이 수십 개에다 창고와 마구간이 있어 행상인들의 물건을 맡아 주기도 하고, 마구간에서는 마소나 당나귀 등 가축을 관리해 주기도 하였다. 이것은 과거 원(院)의 기능이 쇠퇴하면서 민간이 이를 이어받아 운영한 주막일 경우이다. 그러나 시골의 작은 주막은 방 몇 개에 술청이 있는 정도이며, 거리의 간이주막은 허술한 지붕에 가리개로 사방을 막아 놓고 낮 동안에만 장사를 했던 곳도 있었다.

주막의 표시로 문짝에다 ‘주(酒)’ 자를 써 붙이거나 창호지를 바른 등을 달기도 하였다. 또 장대에 용수를 달아 지붕 위로 높이 올리거나, 소머리나 돼지머리 삶은 것을 좌판에 늘어놓아 주막임을 알리기도 하였다. 주막에는 요즘처럼 특별한 간판을 두지 않았으나 이름은 있었다. 이 이름은 주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지은 것으로 오동나무집이요, 우물집, 주인의 뒷덜미에 혹이 있으면 혹부리집 등으로 불렸다.

주막의 구조 중에 특수한 것은, 부엌이 주모가 앉아 있는 방이나 마루에 붙어 있어서 방이나 마루에 앉아서도 바로 술이나 국을 뜰 수 있게 부뚜막을 이어 붙여 만든 경우이다. 주막은 대개 여자가 운영했으므로 주인인 주모나 주파가 중심이 되어 주막 일을 꾸려 나갔다. 주막에서 시중드는 남자아이를 ‘중노미’라고 했는데, 주로 안주를 굽거나 공짜 안주를 먹는 사람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보통의 주막은 처음부터 숙박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방은 주인이 쓰고 나그네는 방과 방 사이에 마루를 깔지 않는 바닥뿐인 봉당에서 기숙했다. 그러다가 점차 숙박기능이 필요하게 되자 주막에서 가장 큰 방을 두어 나그네들이 함께 잘 수 있는 소위 봉노(방)를 두게 되었다. 저마다 사연이 다른 나그네들의 애환은 하룻밤 함께 묵는 봉노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이러한 주막에는 과거 원(院)이나 역(驛)에 있었던 마굿간이나 대장간 등이 없었다. 그것은 주막에 투숙하는 여행객이 대체로 말을 이용하는 공무수행 관리나 지체 높은 양반이 아니라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서는 역과 원, 객주와 여각의 기능이 쇠퇴되고 양반의 사회적 신분이 격하되는 반면, 서민이나 상인의 역할이 활발해짐에 따라 양반도 주막을 이용하게 되었다. 결국 양반과 상민, 즉 반상간의 사회적 의식적 갈등이 익명성(匿名性)과 익면성(匿面性)이 보장되는 주막에서 격렬하게 부딪쳤다.

비교대상

하회 권춘하가옥



권춘하가옥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 내에 위치한다. 이 가옥은 기본적 주막 요소를 가진 일반주택이다. 비록 주막은 아니지만, 주막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 비교대상으로 선정하였다. 권춘하가옥은 정면 4칸에 오른쪽으로 온돌방을 덧댄 ㄱ자형초가이다. 기단은 3층으로 쌓아올린 막돌기단으로 가옥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ㄱ자형이다. 정면 왼쪽부터 부엌, 온돌방, 마루,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왼쪽의 온돌방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ㄱ자형 마당에 평상을 놓으면 전형적인 주막의 가옥구조를 지닌 가옥이라 할 수 있겠다.



국립민속박물관 주막



국립민속박물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번지에 위치한다. 실내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정문과 멀지 않은 곳에 상점과 한약방 옆으로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이 주막 역시 ㄱ자형 평면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왼쪽에 부엌이 1칸 덧달려 있는 형태다. 서까래 아래에 한지로 만든 주(酒)를 달아 주막이란 것을 알게 하였다. 비상시를 대비하여 지붕 아래는 멍석을 말아 걸어놓았다. 또한 오른쪽 온돌 아래에 별도의 아궁이를 만들어 솥을 걸게 하고 있어 음식을 마련하기 쉽게 만들었다.



대망드라마세트 주막



대망드라마세트는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조성되어 있다. 주막의 기본평면구조에서 크게 다르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ㄱ자형 평면구조를 지니고 있다. 부엌, 온돌방, 마루가 기본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어 객손을 위한 공간을 확대하고 있다. 소품으로는 큰독과 멍석 등이 있다. 둘레에 싸릿나무 담장이 빙 둘러져 있어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