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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담
꽃담

꽃담

일반정보

보호와 구분을 위한 장치, 담



담은 담장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외부와의 경계표시 및 적으로부터의 방어라는 실용적 목적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집안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가려주고, 집안에 배치된 각 공간의 성격을 나타내거나 구분 짓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조상이나 성현의 혼령을 모시는 사당 주위에 두른 담은 이곳이 성역임을 알리는 표지이다. 또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담은 남녀유별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사랑채와 행랑채 사이의 담은 양반과 노비를 가르는 위계질서의 표현이다. 담은 이처럼 실용적인 쓰임과 함께 그 시대의 규범관과 심미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실용적 목적에 장식성을 더한 꽃담



벽체나 담장의 벽면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을 ‘무늬놓는다’고 하며, 무늬를 놓아 장식한 벽면을 꽃담이라고 한다. 꽃담은 건축물을 구획하는 벽체와 경계와 방어를 위한 울타리인 담장에 다양한 소재와 문양으로 장식을 더한 것을 말한다. 꽃담은 실용적 목적에서 만들어진 담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장식적인 기능이 가미되면서 나타나게 된다. <<삼국사기>>에 신라시대에 관직에 따른 담장 규모와 치장의 한계를 정한 기록이 있어 당시 이미 담장치레가 유행했음을 보여준다.

전문정보

하늘나라를 담장에 새겨놓은 낙산사(洛山寺) 꽃담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집의 벽체나 담장에 여러 가지 무늬를 놓아 독특한 치레를 하였다. 그렇게 치레한 벽체나 담장을 꽃담이라고 한다. 꽃담에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려는 이상이 담겨져 있다. 원래 자연 속에 살던 시대에는 담이 필요없었지만, 집이 생기고 울타리로서의 담이 필요하게 되면서 울타리에 가려져 볼 수 없는 자연이나 인간의 사연을 무늬로 그려 넣어서 자연 속에 살고자 하는 마음이 나타났다.

꽃담은 화장(花牆), 화문(花紋)담, 화초(花草)담이라고도 부르는데 장식되어진 모양에 따라 석회반죽으로 장식한 분장, 벽돌이나 기와 등을 맞구멍이 뚫어지게 장식한 영롱담, 녹색의 돌로 쌓은 취벽 등으로 불리운다.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색의 글자나 무늬를 놓고 치장하는데, 무늬로는 수복(壽福), 강녕(康寧), 부귀(富貴), 다남(多男), 만수(萬壽), 희(囍) 등의 길상문(吉祥文)을 놓는다. 동물 중에는 사슴, 학, 거북이가, 식물로는 소나무, 대나무, 난초, 국화가 많이 쓰였고, 자연물로는 해, 달, 산, 바위, 폭포 등이 보인다. 이들 열 가지가 십장생 무늬로 함께 사용되었다.

가장 많이 쓰이는 문양은 卍자 亞자 또는 번개무늬 등의 선을 두르고 그 가운데 십장생이나 화초도 등 민화적인 그림을 넣는다. 꽃담의 무늬 표현기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반복되는 직선과 곡선 그리고 점선과 면으로 형성하는 것이고, 둘째는 형체를 평면적으로 묘사해 내는 형상무늬 기법, 셋째는 부조나 투조의 입체적인 기법이다

또한 꽃담은 담장을 쌓는 방식에 따라 안쪽에는 흙만을 넣고 바깥쪽에는 돌을 켜놓아 가면서 다져서 쌓는 외담과 거푸집 없이 담 안팎으로 돌의 머리를 두게 하여 면을 맞추면서 안팎을 동시에 쌓아 올리는 맞담이 있다. 외담은 화려하게 치장하기보다는 견고성과 기능을 위주로 하되 적절한 장식요소를 가미해 효과를 낸다. 대부분의 담장은 맞담이다

꽃담 축조 기법은 물론 오늘날 볼 수 있는 도예 조소까지도 이미 삼국시대에 사용하고 있었다. 이 맥은 조선 시대로 계승되어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새 수도의 천도와 그에 따른 한양성의 건설 등에 장중한 꽃담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은 뒤로는 현저하게 침체되었는데 경제 상태가 그만큼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천여 년의 흐름이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인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그리고 19세기 말에 경영된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의연한 꽃담을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은 민가에도 영향을 미쳐 살림집에서도 꽃담을 설비했는데 지금도 그 자태를 남기고 있는 옛 살림집들을 볼 수 있다. 꽃담은 주로 궁전, 사찰, 관아건물, 민가 등에 장식되었으면 특히 도시의 여염집에 많이 사용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화초담은 경복궁 자경전의 담으로, 바깥담에는 번개무늬와 바자무늬, 안뜰 후원 담에는 십장생 무늬를 새겨 넣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검소함을 숭상하는 풍조가 생기면서 화사한 꽃담 대신 수수하면서도 은은한 꽃담이 집 주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골 집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흙과 돌, 기와나 기와 조각들이 꽃담을 꾸미는 재료가 되었다. 여염집의 흙으로 쌓은 담장일지라도 우리 조상들은 사금파리며 기왓장을 꾹꾹 눌러 박아 담을 치장했고 이 또한 소탈한 대로 꽃담이 되어 고을을 정겹게 했다

사찰 담장 중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양양 낙산사의 담장이 있다. 기와와 흙을 섞어가며 쌓았는데, 다 쌓은 후 장작불로 구웠기에 전체적으로 붉은 색조를 띄고 있다. 또한 담을 쌓을 때 둥근 돌을 중간 중간에 박아 넣어 튼튼하게 했는데, 이 동그랗게 심(心) 박히듯 들어있는 돌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표현하는 것이어서 이 절의 경내가 곧 하늘임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사찰이나 민가에서는 중심건물을 다른 건물과 구별하기 위해 담장이란 인위적인 구획선을 두었다, 예컨대 서원이나 향교에서는 건물을 구획하는 담장을 쌓고 그 사이에 외삼문과 내삼문을 세웠다. 낙산사의 담장도 이러한 양식적인 큰 틀에 포함된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즉 법당인 원통보전 지역 주변을 가장 신성한 지역으로 하고 이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천왕문, 조계문, 대성문을 지나야 하도록 가람 배치를 구성했다.

낙산사 꽃담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34호이다. 조선 초기 낙산사의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질 때 축조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 1920년대의 사진을 참고할 때 현재와는 다른 돌담 구역도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길이는 220여 미터이고 두께는 1미터가 조금 안된다. 높이는 약 4미터로 일반 담장보다 훨씬 높다.

낙산사 법당인 원통보전의 둘레를 방형으로 에워싸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담장은 뒤편의 길이가 6m이고 좌측은 20여m, 우측은 8m가 원상대로 남아 있다. 나머지는 근처에 다시 연결하여 쌓은 것이다. 이 담장은 그 위치에 따라 두 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다시 초석을 놓은 것과 2, 3단의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은 두 종류가 있다. 그리고 지세에 따라 층이 나게 평기와와 강회 및 진흙을 차례로 다져 쌓았는데, 6-7단의 평기와를 쌓은 후 상하교차로 원형의 화강석을 박아 재료 및 형태에 변화를 주고 있다. 밖의 면은 두 가지 형태로 쌓았다. 법당 뒤편 담장의 뒷면은 큰 자연석으로 쌓고 그 위에 판석에 가까운 작은 돌들을 위주로 석성처럼 쌓아 돌각담의 형태가 되었다. 다른 형태는 평기와와 진흙으로 다져 쌓은 일반적인 사대부 집안의 담과 같은 양식이다. 즉 앞면은 평기와와 진흙 그리고 둥근 화강석으로 쌓되 뒷면은 자연석 또는 평기와와 진흙으로 쌓은 두겹의 맞담인 셈이다.

충청남도 보은군의 법주사(法住寺)에도 이와 유사한 담장이 있으나 각 재료의 사이를 마감질할 때 진흙으로 정제되게 메워 질감면에서는 사뭇 다르다. 왕릉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다.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능인 정릉과 숙종의 비, 인경왕후의 능인 익릉 그리고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인 원릉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능을 둘러싼 것은 곡장(曲墻)이라 하지 담장이라 부르지 않는데, 본래 뜻은 같으나 용어가 다르다. 또 능에서는 평기와 대신 직사각형에 가까운 구운 벽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왕릉의 곡장은 줄이 정확히 들어맞는 경직된 문양을 갖는 반면 낙산사의 담장은 평기와와 원통형 석재 그리고 진흙에서 오는 질박하면서도 담장으로부터 받는 안정감이 왕릉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줄이 맞으면서도 맞지 않고, 원형 화강석과 같은 잘 다듬은 석재를 사용했으되 꽃담과 같이 화려하지 않은 낙산사의 담장은 다른 담장에서 느낄 수 없는 나름의 독특한 멋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교대상

낙산사 원장



낙산사 원장은 시도유형문화재 3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55번지에 위치한다. 낙산사의 원통보전을 감싸고 있는 담장인데,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담장은 안과 밖이 틀린데, 안쪽은 기와로 쌓고, 바깥쪽은 막돌로 쌓아 이색적이다. 담벽의 높이는 3.7미터, 길이는 220미터이다. 암키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으면서 위 아래로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으로 둥근 화강석을 배치하여 단조로운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법당을 향하고 있는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층의 길게 다듬은 돌기단을 깔고, 그 위에 다시 한 층의 긴 받침돌을 놓았다.



하회마을 꽃담



하회마을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위치한다. 하회마을 내에는 판담, 화방담, 흙담이 존재한다. 하회마을의 전통적인 담 축성 방식은 다른 담쌓기와는 다르다. 널빤지로 틀을 만들고 그 사이에 진흙, 돌 지푸라기, 석회 등을 넣어서 굳힌 다음 판장을 떼어내어 담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것을 ‘판담’이라 한다. 또는 흙뭉치를 일정한 크기로 다듬어 굳힌 흙벽돌을 차곡차곡 쌓은 흙벽토담도 있다. 흙담이기 때문에 비가 올 때 젖거나 쓸려 내려가지 말라고 담에 기와지붕을 이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흙 사이사이 기와를 넣어 무늬를 만든 화방담을 넣어 아름답게 조성하였다.



한개마을 돌담



한개마을은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위치한 한옥마을이다. 한개마을에는 교리댁, 북비댁, 월곡댁, 응와고택, 한주종택, 하회댁 등 종가와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길지로 곱히는 전통마을이다. 한개마을의 담장은 그 높이가 높고, 돌이 주가 되고, 흙으로 돌을 고정시켜 만든 돌담들이 집과 집을 구분하고, 거미줄 같은 골목길을 만들고 있다. 골목이 좁고, 담장의 높이가 높고, 골목길이 곡선으로 굽어 있어 길이 아름답다. 담장에는 기와를 얹어 기와지붕과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