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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거주형
정자 거주형

정자 거주형

일반정보

자연과 동화되기 위해서 지어진 집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그 곳에서 친구들과 시를 짓고, 노래를 읊는 것은 조선시대의 공통된 모습이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조선시대 16세기에 들어와 지방에서 사림세력이 지은 정자들은 특별한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다. 사림들에 의해 지어진 정자는 단순히 시를 읊거나 술을 마시며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선비들의 높은 이상과 투철한 학문 정신을 실현하는 곳이다.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며 시와 노래를 짓던 장소였다. 건물은 때로는 정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정사라고 불리기도 하고 단지 하나의 별당으로 지어지기도 하였다.



온돌이 결합되어 머물며 학문을 연마하는 기능이 강화된 영남의 정자



정자란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안으로는 비어 있고 밖으로는 열려 있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를 모두 지칭한다. 또한 정자건축의 중심에는 마루가 놓여 있다. 누마루와 구분되지 않지만 점차 온돌이 들어서면서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안동권 정자건축에는 온돌을 갖춘 모습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3칸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옆으로 온돌방을 둔 모습이 전형이 된다. 이는 정자가 단순히 경치를 즐기는 곳이 아니라 머물면서 후손을 기르는 곳이라는 기능이 강조되는 것이다.

전문정보

오래도록 머물며 자연과 교류하는 공간, 영남(嶺南)의 정자(亭子)



경치 좋은 곳에 누각이나 정자를 짓고 그 곳에서 친구들과 시를 짓고, 노래를 읊는 것은 조선시대의 공통된 모습이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조선시대 16세기에 들어와 지방에서 사림세력이 지은 정자들은 특별한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다. 사림들에 의해 지어진 정자는 단순히 시를 읊거나 술을 마시며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선비들의 높은 이상과 투철한 학문 정신을 실현하는 곳이다.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며 시와 노래를 짓던 장소였다. 나아가 그 건물은 선비 정신을 바탕으로 고도의 집약과 절제로 완성한 뛰어난 건축물이다. 건물은 때로는 정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정사라고 불리기도 하고 단지 하나의 별당으로 지어지기도 하였다.

누정의 종류 가운데 정(亭)은 일반적으로 정자(亭子)라 하는데 가장 많은 형태이다. <<원치(園治)>>에는 “정이란 머문다는 뜻의 정(停)자이다. 여행하는 사람이 잠시 멈추어 쉬는 곳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사륜정기(四輪亭記)>에서 “탁 트여 텅 비고 환한 것을 정(亭)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안으로는 비어 있고 밖으로는 열려 있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를 모두 지칭한다. 또한 정자건축의 중심에는 마루가 놓여 있다. 누각에 비해서 작은 건물이다. 이 역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된 집이다. 정자는 누에 비하여, 그 자체가 아름답거나 훌륭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장소 선택의 의도와 동기, 그것을 즐기던 사람의 마음,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형이상학적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일반적으로 휴식할 장소로서 산수 경치가 좋은 높은 위치에 세워져 있다. 정자는 누각에 비하여 작은 건물이라 하여 정자라 부르며, 이를 정각(亭閣)이나 정사(亭舍)라고 부른다. 정사 역시 높은 언덕이나 대 위에 건립한 집으로 정자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경영주체면에서 누, 대, 각은 주로 관청에서 운영하는 형태를 띠며, 정자는 개인적으로 운영한 형태를 띤다. 한편 하나의 정자가 ‘-재’나 ‘-정사’ 등의 명칭을 갖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전남 담양의 송강정(松江亭)은 죽연정사로도 불리며, 광주의 소해정은 경의재로, 광산의 관호정(觀湖亭)은 계남정사로 불리기도 한다. 정자와 재나 정사 등의 기능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기능을 갖는 데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굳이 차이를 둔다면 ‘재’가 더 개인적인 사적 학문의 장소라는 의미가 강하고, ‘정’과 ‘당’은 일종의 별장과 같아서 학문과 휴식을 즐기는 용도가 크며, ‘정사’는 개인적인 학문의 장소이지만 후진을 모아 강론을 하는 공적인 의미가 부여된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누정은 경상도의 영남지역과 전라도의 호남지역이 가장 많이 지어졌는데 그 특징이 뚜렷이 구분된다.

영남지방에 건립된 정자들은 주거와 강학공간을 겸비한 건축형식이거나 인접한 곳에 살림집을 두고 있는 장기적인 생활이 가능한 사랑채 및 별당 형식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예로 경북 봉화의 도암정(陶巖亭)과 수은당(睡隱堂)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뒤편 좌우 1칸씩을 온돌방으로 하고, 전면 3칸과 뒤편 중앙의 1칸을 마루방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안동일대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들이 운집하여 학문을 쌓고, 제자를 길러내기 위해서 많은 정자들을 지었다. 하회마을의 부용대에 세워진 겸암(兼岩) 유운룡(柳雲龍)의 겸암정사(兼岩精舍),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수양처로 삼았던 청석산 가파른 절벽 위의 석문정(石文亭)은 저마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린 변화 있는 평면구성과 외관의 처리에서 정자건물의 또 다른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이들 정자들의 공통점은 주거기능과 교육기능이 강조되어 제법 커다란 온돌방이 배려되어 있다.

비교대상

임청각 군자정



임청각 군자정은 보물 18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안동시 법흥동 20번지에 위치한다. 조선 중기에 지은 T자형 평면을 가진 정자형의 누로, 양반주택의 별당 건물이다. 대문에 들어서 왼쪽으로 정침 오른쪽으로 군자정을 만날 수 있으며, 군자정 오른쪽에는 방형 연못이 설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중심은 남향의 대청이고, 그 서쪽에 이어서 지은 T자형의 온돌방이 부설되어 있다.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둘레에는 툇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으며, 출입은 두 군데에 마련해 놓은 돌층계를 이용하게 되어 있다.



체화정



체화정은 시도유형문화재 20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안동시 풍산읍 상리 2리 447번지에 위치한다. 풍산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넓은 연못과 함께 어우러진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2층 건물로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지면과 떨어져 있으며, 온돌방 1칸을 만들었다. 창호가 아름다운데, 문에 또 다른 작은 창을 내어 달아 전망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앞면에는 모두 창을 달았으며, 옆에는 나무 벽으로 되어 있다. 현판 <담락재(湛樂齋)> 글씨는 조선 제일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가 쓴 글씨이다.



명옥대



명옥대는 문화재자료 17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산 76번지에 위치한다. 봉정사로 들어가는 계곡 한편에 세워져 있으며, 주변의 계곡과 잘 어우러진다. 이 정자는 현종시대 퇴계 이황이 후학들에게 도를 강의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4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뒷면 2칸은 방으로 만들었으나, 후대에 지금처럼 고친 것으로 보인다. 4면에 난간을 설치했으며, 맞은편에는 ‘명옥대(鳴玉臺)’라 새겨진 바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