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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묘 장식물 장명등
세중돌박물관 장명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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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묘 장식물 장명등

분묘 장식물 장명등

일반정보

저승길 밝게 비추는 석등



장명등은 무덤 앞에 세워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만든 석조물이다. 처음에는 처마끝이나 기둥에 달아 놓고 불을 켜는 것을 장명등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무덤 앞이나 전각 앞에 세우는 석등을 말한다. 이러한 장명등은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무덤 앞에 세워진 것이다. 원래 승려의 부도 앞이나 사찰의 경내에 세우는 석등에서 유래하였다. 고려시대에 묘소 앞에 세워지기 시작하다가 조선시대에는 왕릉 앞에 세우는 필수적인 석조물이 되었다. 장명등은 석등롱이라고도 부른다. 장명등은 묘역이나 건물의 외부 공간을 밝히는 데 있으나, 무덤 주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기능을 지니기도 한다.



받침대와 몸체와 지붕으로 이루어진 석등



장명등은 받침대와 몸체, 지붕 부분으로 구성된다. 형태상으로 구별하면 화사석, 옥개석, 대석이 모두 같은 8각형이나 4각형으로 만드는데 옥개석이나 대석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간주석 대석은 상하대석 사이에 4모나 8모형의 기둥돌을 세운 것이고 간단하게 상하대석과 기둥돌을 한돌로 새겨낸 것도 있다. 둘째, 요고형 대석은 대석 전체를 한돌로 만들었는데 상하대석 사이 허리부분이 장구모양으로 가늘게 된 것이다. 셋째, 운족형 대석은 요고형 대석과 비슷하나 하대석이 높아지면서 굽은 책상다리를 새겨낸 것이다. 그 굽은 다리새김을 조선조 능지에서는 운족이라 하였다.

전문정보

무덤 밝히는 장명등(長明燈)



장명등(長明燈)은 무덤 앞에 세워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만든 석조물이다.

처음에는 처마끝이나 기둥에 달아 놓고 불을 켜는 것을 장명등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무덤 앞이나 전각 앞에 세우는 석등을 말한다. 이러한 장명등은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무덤 앞에 세워진 것이다. 원래 승려의 부도 앞이나 사찰의 경내에 세우는 석등에서 유래하였다. 고려시대에 묘소 앞에 세워지기 시작하다가 조선시대에는 왕릉 앞에 세우는 필수적인 석조물이 되었다.

장명등은 석등롱(石燈籠)이라고도 부른다. 장명등은 묘역이나 건물의 외부 공간을 밝히는 데 있으나, 무덤 주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기능을 지니기도 한다.

신라시대에는 주로 팔각형 석등이 세워졌으나, 고려시대에는 방형 석등이 쓰이게 되었고, 간주석도 변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의 왕릉제도를 계승하였으나 8각형 석등에 높은 급경사로 된 지붕 개석과 아울러 대석도 굵어지면서 크게 변화하고 또 문양도 다르게 의장되기에 이르렀다.

장명등은 받침대와 몸체, 지붕 부분으로 구성된다. 형태상으로 구별하면 화사석, 옥개석, 대석이 모두 같은 8각형이나 4각형으로 만드는데 옥개석이나 대석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간주석(竿柱石) 대석은 상하대석 사이에 4모나 8모형의 기둥돌을 세운 것이고 간단하게 상하대석과 기둥돌을 한돌로 새겨낸 것도 있다.

둘째, 요고형(腰鼓形) 대석은 대석 전체를 한돌로 만들었는데 상하대석 사이 허리부분이 장구모양으로 가늘게 된 것이다.

셋째, 운족형(雲足形) 대석은 요고형 대석과 비슷하나 하대석이 높아지면서 굽은 책상다리를 새겨낸 것이다. 그 굽은 다리새김을 조선조 능지(陵誌)에서는 운족(雲足)이라 하였다.

옥개석도 8모 지붕과 4모 지붕으로 되었는데 4모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한 것과 팔작지붕으로 한 것이 있다. 받침대는 8각과 4각 기둥 모양이 주를 이루고, 그 위에 등을 넣을 수 있는 창인 화창이 만들어져 있다. 이 화창은 8모 석등에서는 4면에 내고 4면은 벽으로 하였는데 4모 석등에서는 4면에 내는 것이 보통이나 2면에만 낸 것도 있다.

장명등의 경우 조선시대의 무덤에 많이 세워졌으며 무덤 주인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제한되었다. 주로 일품의 재상에 한해서만 세울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장명등으로 대표적인 8각형 장명등은 대석을 한 덩어리의 돌로 상대와 허리 및 하대를 새겨서 요고형 대석으로 만들었다. 상대 하면과 하대 상면에는 연화판을 새기고 또 연주대를 두어 장식하였다. 허리 중대는 모서리에 호로병 모양을 쇠시리한 동자주를 새기고 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화문을 새기기도 하였다.

후대에는 하대에 굽은 책상다리 모양을 새기고 이것을 운족이라 하며, 그 모양은 개다리소반과 같다.

조선 말기에 이르면 4각형 장명등이 만들어지고 옥개석은 건물 팔작지붕형으로 꼭대기에 보주를 장식하였다. 화사석도 4각인데 화창은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뚫었다. 상대석은 운두가 높은 4각형으로 각면에는 화문을 새겼다. 하대석은 개다리소반 모양으로 되고 위에 낮은 상대석 받침을 두었다. 상대석 밑에 대판(帶板, 널띠)과 상대석 받침의 각면에는 화문을 새기고 얕게 판 운족의 안면에도 화초문을 새기었다.

저승길을 밝혀 준다는 장명등은 이승과 저승의 진리를 회고하게 하는 진리와 자비와 베풂의 등불이다. 향로형 받침에 사각, 육각, 팔각의 가운데 돌, 각양 각색의 무늬로 장식한 화사(火舍)의 창, 고대광실의 팔작지붕을 한 옥개석 겉모습과 함께 조각 미술의 극치를 이루는 수작이다.

비교대상

세중돌박물관 장명등



세중돌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303-11번지에 위치한다. 장명등은 야간에 묘소의 일을 볼 때 불을 밝히기 위한 시설이다. 이 장명등은 크게 두 개의 돌을 이용해 만들었다. 몸에 해당하는 하대석과 화사석이 한 돌로 만들어져 있고, 옥개석과 상륜부가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하대석은 세 개의 덩어리로 표현되어 있는데, 밑의 두 개는 사면에 구름무늬의 장식이 되어 있고, 위의 돌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다. 화사석은 방형으로 사방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옥개부는 기본적으로는 우진각 지붕의 형태처럼 표현하고 있으며, 사면에 각각 박공을 새겨놓았고, 옥개의 사방 끝을 올려놓아 날렵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에는 보주와 보륜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세중돌박물관 장명등



세중돌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303-11번지에 위치한다. 장명등은 불교의 석등과 유사하지만, 유교의 절제미를 느낄 수 있으며, 정형화 되어 있다. 이 장명등은 두 개의 돌을 이용해 화사석과 받침돌을 하나로 만들고, 옥개석과 상륜부를 하나로 만들었다. 하대석 맨 아래에는 다리 모양을 조각하여 놓고 운문으로 장식하여 놓았고, 다른 윗돌도 운문으로 장식하였다. 돌의 상단에는 각각 복연으로 장식하여 화려한 모습이다. 화사석은 사방으로 방형의 구멍을 내고 각각 테두리를 음각하였다. 옥개부에는 특히 박공부분이 강조되어 있고, 사방 끝을 올리고, 장식하여 놓은 모습이다. 상단에는 역시 보주와 보륜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세중돌박물관 장명등



세중돌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303-11번지에 위치한다. 장명등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만 가지고 있는 형태이다. 세 개의 덩어리로 되어 있는 몸신 부분과 옥개부가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세 개의 덩어리로 되어 있는 몸신부분은 별다른 조각 없이 각각 테두리만 음각하여 간략화 되어 있으며, 가장 위에 있는 화사석은 凹모양으로 구멍을 내어 옥개석의 구멍을 내어 맞추어 놓고 있다. 옥개석 역시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양끝을 올린 것은 다른 장명등과 동일하다. 상륜부는 보주와 보륜으로 마무리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