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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교육공간

향교구역
대성전
대성전

향교 대성전

일반정보

공자와 성현을 본받는 곳



향교 건축은 크게 성현을 받드는 제사공간과 학생을 길러내는 교육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성리학이 통치이념인 조선이 건국되자 유학의 상징인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이 성균관으로부터 지방의 향교에 이르기까지 문묘라는 별도의 공간으로 특별히 숭배되었다. 문묘는 공자와 선현에 대한 제사장소일 뿐만 아니라 지방민들에게 유교이념을 보급하는 교화의 구심점이었다. 대성전은 문묘 구역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다른 건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구조, 장식 측면에서 중심건물로서 가장 뛰어난 상징성을 보이고 있다.



향교 안에서 가장 신성한 곳에 자리 잡은 제사시설



대성전은 향교 안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장식적인 건물이지만 정형화된 평면 구성을 가지고 있다. 모범이 되는 중국 곡부에 있는 공자묘의 대성전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평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성전의 평면 형태는 정면 칸수는 반드시 홀수칸을 취하는데 5칸이나 3칸의 규모였다. 자세히 보면 성균관의 대성전은 5칸으로 남향이며, 지방의 주에 있는 향교의 대성전은 3칸으로 모두 동서무가 딸려 있지만 현에는 동서무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정면에 툇칸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전면에 툇칸을 둔 개방형의 대성전이 우리나라 향교의 67%에 해당한다.

전문정보

공자와 유학자를 모시는 가장 중요한 제사건물, 대성전(大成殿)



향교의 건물은 크게 성현(聖賢)에 제사지내는 제사(祭祀)공간과 학생(學生)을 길러내는 교육(敎育)공간으로 나누어진다. 두 공간 사이에는 담을 쌓아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구조가 언제부터 정착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는 제사공간과 교육공간이 한 건물 안에 있었다. 이것은 당시 향교의 기능이 교육에 있었고, 제사는 부수적이라는 의미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되고, 통치이념으로 성리학(性理學)이 숭상되자 유학의 상징인 공자(孔子)를 모시는 대성전(大成殿)이 별도의 공간으로 독립하여 배향(配享)의 기능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문묘(文廟) 구역은 공자와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과 동서무로 구성 되어 있다. 문묘는 공자와 선현에 대한 제례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유학의 상징이었고 지방민들에게 유교이념을 보급하는 교화의 중심지였다. 이 때문에 향교가 적극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조선 초기부터 기능이 쇠퇴해진 후기까지도 향촌사회에서 지속적인 역할을 하여 왔다.

대성전은 문묘 구역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건축적으로도 향교 내에서 다른 건물과 비교할 때 규모, 구조, 양식 및 장식적인 측면에서 중심건물로서 가장 뛰어난 상징성을 보이고 있다. 지방 교육기관으로서 문묘가 없으면 향교의 개념에 들지 않았다. 즉 향교는 지방민을 교화시키는 교육기관이기 이전에 성현의 가르침을 기리는 문묘라는 제사공간이 있음으로서 존재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성전의 전면 중앙에는 반드시 ‘대성전’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성균관에는 성묘(聖廟)라는 현판이 덧붙여 걸려 있다. 이 대성전이란 말은 당나라 때에 문선왕전(文宣王殿)이라 불리다가 송나라의 휘종(徽宗) 황제가 공자를 숭상하여 신고성선현지대성(新古聖先賢之大成)이라 칭한 데서 비롯되었다. 결국 대성전이란 공자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받드는 분묘이다. 그래서 공자의 위패(位牌)를 정위(正位)에 배치하고, 사성(四聖) 십철(十哲) 등 선성(先聖)들의 위패를 배향하여 제사지내는 제사건축이다.

대성전은 향교 안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장식적인 건물이다. 그렇지만 정형화된 평면 구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 곡부(曲阜)에 있는 공자묘(孔子墓)의 대성전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평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성전의 평면 형태는 정면 칸수는 반드시 홀수칸을 취하고 있는데, 5칸 혹은 3칸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문묘의 규모는 성균관의 대성전은 5칸으로 남향이며, 주(州)와 현(縣)의 대성전은 3칸으로 모두 동서무가 있지만 현에는 무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정면에 툇칸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전면에 툇칸을 둔 개방형의 대성전이 우리나라의 향교 67%에 해당한다.

비교대상

인동향교 대성전



인동향교 대성전은 문화재자료 2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구미시 임수동 409-3에 위치하고 있다. 인동향교는 고려 공양왕 2년에 처음 지은 것으로 보이며, 1634년 소실된 향교를 인의동으로 옮겨 세웠으며, 1988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정면 3칸을 툇칸으로 하여 외부 개방 형태를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내부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6칸의 규모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양쪽 끝에는 풍판을 설치하였다. 기단은 자연석 막 기단을 사용하고 있다. 인동향교의 대성전은 정면이 아름답다. 정면 문 위에 설치된 창과 그 창 위로 화반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익공부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경산향교 대성전



경산향교 대성전은 삼문과 함께 문화재자료 10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경산시 신교동 62번지에 위치한다. 1390년 고려 공민왕 때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여러 차례 다시 세워졌는데, 1681년 숙종 때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지었다. 현재 경산향교는 대성전만 남아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다. 정면에 각각 3개의 문이 설치되어 있고, 좌우 각각 들창이 설치되어 있다. 창의 색깔을 푸르게 하여 흰 회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지붕에는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경주향교 대성전



경주향교는 시도유형문화재 1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교동 17-1번지에 위치한다. 경주향교가 처음 지어진 것은 알 수 없으나 1492년 조선 성종 때 수리했다는 기록이 처음 나온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00년에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평지에 위치한 경주향교는 앞쪽에 동서무와 대성전을 두고, 뒤쪽에 강학공간을 두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앞뒤에 각각 툇간을 설치하고 있다. 측면이 넓어 맞배지붕 또한 크고 웅장하게 표현되어 있다. 옆면에 풍판을 곡선으로 처리하고 있다. 기단은 높게 설치하고 정면에 1개의 계단과 좌우 측면에 각각 오를 수 있는 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화려하지 않게 단청이 되어 있어 단아한 느낌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