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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안동도호부_강가형

소개
개요

고을 명칭 : 안동도호부(옛 지명 고타야, 고창, 영가, 복주)
고을 주소 :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지역 일대
재현 기준 : 1602년(조선 선조 35) 안동 지방지 <<영가지>> 편찬
고을 입지 : 낙동강 본류에 형성된 강가 고을
읍성 형태 : 북쪽으로 낮은 야산을 끼고 잇는 평산성
관아 배치 : 도호부 규모의 객사, 동헌 등 관청 읍성 동북쪽 집중
성문 개수 : 4개(남문, 동문, 서문, 북문)
성곽 시설 : 동문(철비문), 동남 방향 해자, 여첩
우물 연못 : 읍성 안에 4개의 연못, 낙동강 인접한 늪지 풍부
고을 기능 : 도호부의 행정기능과 낙동강 상류의 상업기능 복합

위치

안동은 경상북도의 정중앙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삼국시대 이래로 경상북도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낙동강을 통한 물길과 태백산과 소백산을 거치는 뭍길이 방사선을 이루면서 안동에서 만나고 있다. 안동 주변에서는 동쪽으로 영양, 청송과 만나며, 서쪽으로 예천, 남쪽으로 의성, 북쪽으로는 영주, 봉화와 만난다.

역사

안동은 신라시대 때에 창녕국으로 출발하여 고타야군과 고창군으로 바뀌며 성장하였다. 고려가 건국할 때 병산 전투에서 삼태사가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물리친 공으로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그 뒤 영가군과 길주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안동도호부로 승격되어 경북의 핵심도시로 성장하였다. 특히 고려 말기에 홍건적의 난리를 피해 온 공민왕을 통해서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조선시대를 통해서 재야 선비, 즉 사림의 정신적 고향인 동시에 지방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조선 중기 퇴계 이황이라는 큰 선비를 중심으로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인물의 고향이다. 지금도 골짜기 골짜기마다 살아 숨쉬고 있는 동성마을들과 활발한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는 교육문화기관들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특징

안동은 군사와 행정 기능을 겸비한 읍성과 물자의 이동과 상거래가 활발한 나루터로 이루어진 강가마을, 즉 내륙 도진취락의 형태를 함께 가지고 있다. 둥글게 만들어진 읍성 안팎의 풍경과 나루터를 중심으로 펼쳐진 긴 시장골목이 특이할만 하다.

낙동강은 큰 강이면서도 본류가 뭍길의 방향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본류보다는 지류에 수로교통이 발달하였다. 낙동강의 내륙수로에는 나루터마을이 형성되어 물자의 교역을 위한 장소로 이용되었다. 나루터에는 사공과 그 가족이 거주하는 가옥, 여객과 물자를 운반하는 강배, 여객의 숙박과 물자를 보관하는 객주집 등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촌락의 공간구조는 일반어촌이나 농촌과 달랐다. 물자의 집산과 교통의 중심지로서 상업기능이 매우 중시되어 강변을 따라 길게 시장거리가 형성되었다.

낙동강은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는 영남의 남북 간에 물자를 수송하고 사람의 왕래를 도와주는 수상 교통로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물줄기를 경계로 양쪽 지역을 동서로 격리시키며, 남강과 황강 등은 남북으로 격리시켜 왔다. 그 결과로 조선시대에 낙동강을 경계로 왼쪽에 영남 좌도와 오른쪽에 우도로 가르는 관행이나, 좌도와 우도 지역의 문화를 변별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생활권이나 시장권, 통혼권 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